“Boxing Day”

#9

by 램프지니

뉴스에서는 이색적인 풍경을 중계하고 있었다. 호주에서 12월 26일은 ‘박싱 데이(Boxing Day)’라고 불리는 공휴일이다. 원래 박싱 데이는 영국에서 유래한 날로, 귀족들이 하인들에게 선물 상자(Box)를 나눠주던 전통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점차 상점들이 대규모 할인 행사를 하는 날로 변했고, 이제는 쇼핑 전쟁이 벌어지는 날이 되었다.


그야말로 박싱 데이는 특별한 날이다. 모든 백화점과 상점이 대대적인 세일을 하는데, 그 할인 폭이 어마어마했다. 필요한 물건을 박싱데이에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허다했다. 인기 있는 물건을 선점하려면 오픈런을 해야 했고, 그 와중에 넘어져 다치는 사람들이 생겼다.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었다.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이 쓸데없이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친구가 이런 날은 꼭 백화점에 가야 한다고 강력 추천했다. 딱히 끌리지도 않았고 뉴스를 보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했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이라 마음을 바로 뒤집는 게 스스로도 웃겼다.

“이것도 문화니까 한 번 경험해 봐야지!”

라며 몇 명이 의기투합해 쇼핑 전쟁터로 향했다.


“와우~”


그날 처음으로 호주 사람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많이 모여 있는 걸 봤다. ‘물밀듯이 몰려든다’는 표현을 책에서만 봤는데, 그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마치 달리기 경주라도 하듯이 매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웃긴 건 나도 거기에 합류해서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친구와 마주 보며 “우리 너무 웃긴다” 라며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그 쇼핑전쟁에 일조를 하고 있었다.


쇼핑을 하면서 친구와 몇 번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엇갈려 헤어졌다. 결국 몇 시에 어디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뒤, 각자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흩어졌다. 몇 시간 후, 다시 만나 서로의 ‘전리품’을 자랑하며 얼마나 싸게 샀는지 흥분해서 이야기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이런 쇼핑 열전에 뛰어든 내가 우습기도 했지만,

“이것도 경험이니까 괜찮아”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 후 몇 년간 박싱 데이 쇼핑에 도전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고 주차 공간을 찾는 것도 전쟁이라 차라리 일을 하겠다고 자청한다. 요즘엔 온라인 쇼핑이 대세니까 굳이 사람들 틈에서 싸울 필요가 없어진 것도 한몫한다. 그때의 열정과 흥분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이제는 편하게 집에서 클릭 몇 번으로 박싱 데이를 즐기는 쪽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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