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이 만들어준 길“

#6

by 램프지니

호주에 왔을 때, 내 나이가 적지 않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늦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랭귀지 스쿨에 들어가서 보니,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금방 알게 되었다.


’ 서른‘이라고 쓰인 명함은 내밀지도 못했다.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도 많아서 놀랬고,

각자의 사연을 품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름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 앞에서는 사연을 꺼낼 수 조차 없었다.


랭귀지 스쿨을 졸업해야 간호대에 입학할 수 있는 조건부 입학생들이라는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로 정보를 나누고, 공부하며 의지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우리끼리만 다니면 안 돼.”
“영어만 써야 해.”

아무리 다짐해도 급하면 툭하고 튀어나오는 한국말 때문에 그런 원칙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같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이 편한 친구들이 생겨났다. 그중 한 명은 나와 동갑인 친구였다. 나이가 같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마음이 열렸다. 비슷한 시기에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설정한 우리였고, 살아온 궤적은 달랐지만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그 친구와 나는 특히 ‘영어’에 대한 고민이 비슷했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언어로 살아가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고 현실적인 일이었다. 머리로는 아는 문장인데 입으로는 나오지 않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굴러다니는 어휘 속에서 길을 잃었다. 우리는 종종 만날 때마다 영어 이야기를 했고, 어떻게 하면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를 두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말했다.

“우리, 밤마다 영어로 전화해 볼래? 얼굴 보면 민망하고, 급하면 자꾸 한국말 나오잖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웃음이 터졌지만, 곧 진심으로 들렸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의 실수를 가장 너그러이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만큼 연습 상대자로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밤, 영어로 통화하기 시작했다. 하루 중 짧게는 20분, 길게는 한 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특별한 주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오늘 있었던 일, 수업에서 들은 이야기, 뉴스에서 본 소식이나 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영어로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더듬더듬, 말끝을 흐리기도 하고 중간중간 어색한 웃음이 끼어들었지만, 하루하루 쌓이는 시간 속에서 우리 둘 다 조금씩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다. 틀려도 괜찮고, 잠시 멈춰도 괜찮았다. 문법보다 중요한 건,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대화의 흐름을 놓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연습 속에서 나의 영어는 조금씩 말이 되기 시작했고, 나의 자신감도 그만큼 자라났다.


그렇게 영어에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열심히 한덕에

10개월 만에 랭귀지 스쿨을 졸업했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절박함으로 버틴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켰고,

그 절박함이 결국 길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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