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홈스테이에서의 3개월은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쉽다’고 말하기엔 분명 고단한 시간이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도 정성껏 차려준 마음을 생각해 억지로라도 삼켜야 했고, 처음 들어선 낯선 집에서 금세 편안함을 느낄 정도로 뻔뻔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그 공간은 늘 조심스러웠고 조용했다. 그래서 더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난방 시스템이 한국과는 전혀 달라서, 몸이 녹을 틈 없이 하루 종일 추위에 떨기도 했다. 따뜻한 보일러 바닥에 익숙한 내게 카펫 위의 냉기는 생각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히터도 틀 때뿐 끄면 차가운 공기와 말 없는 시간 속에서, 그리움은 하루하루 더 깊어졌다.
여러 가지를 따지고 볼 때 홈스테이보다는 셰어하우스가 좋겠다고 판단했다. 원래부터 오래 있을 생각이 아니었기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옮기게 되었다. 3개월 만에 홈스테이 생활을 정리하고 친구소개로 셰어하우스에 방하나를 구했다.
학교와 가까운 곳에 살면서 좀 더 시간을 여유롭게 쓰고 싶었다. 모든 걸 통제하며 나 스스로 살아가기로 했다.
셰어하우스 생활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식료품도 직접 가서 사야 했고 차가 없으니 장 본 걸 들고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집 나가면 고생이란 걸 몸소 경험하며 지냈다. 주방과 화장실은 공용이었고, 밥을 먹거나 씻으러 가려면 무조건 방에서 나와야 했다. 어쨌든 부딪혀야 했다.
처음엔 모든 게 서툴렀다. 모르는 사람들과 한 집에서 사는 건 생각보다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대부분 자기 방에서 생활하고 공부에 전념했고 여자들만 사는 집이라 큰 불편은 없었다.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며 서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진짜 도전은 따로 있었다.
’ 외로움‘
어쩌면 이게 가장 힘든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에 지쳐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어느 날 문득 보이지 않으면,
“돌아갔대.”
짧은 한마디로 끝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다들 같은 고민을 안고 있어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렇게 떠난 사람이 꽤 많았다.
정말 힘들 때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지만
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엄마, 나 잘 있어요. 걱정 마세요.”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사실은 나 너무 힘들어.”
이 한마디를 입 밖에 내는 순간
무너질 것만 같아서.
열두 번도 더 하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전화부스 안에서 한참을 서서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았다.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해 준 힘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답은 단순했다.
엄마.
그리고 가족.
그리고 지금,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와 씨름하며
어디선가 버티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해 주고 싶다.
“괜찮아.
처음은 누구나 힘들어.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어느새 너는 성장해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