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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Sep 13. 2018

강경의 느린 구름 아래에서 5


집 앞에는 능소화나무가 얼기설기한 철근 비계를 타고 올라가 한여름에 귤 색깔 같은 주황색 꽃을 피운다. 능소화가 하르르 떨며 땅으로 떨어지면 시커먼 염소가 다가와 날름 집어삼킨다. 네가 떨어지기를 얼마나 학수고대한 줄 아느냐는 표정으로...


 이 능소화는 다른 꽃과 달리 추하게 시들어 떨어지는 일이 없다. 늘 보면 땅바닥에 떨어져도 피어있는 그대로다. 마치 땅에서 피어난 꽃처럼. 능소화는 과거시험에 급제했을 때 씌워주는 어사모에 꼽는 꽃이라서 예전에는 뜰에 많이들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노는 시험만 보면 죽을 쑤니 그 꽃도 별 효험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마당에는 복숭아나무와 무화과나무, 그리고 서노의 할머니가 애지중지 키우는 각종의 장미가 있는데, 서노의 할아버지는 그중 복숭아나무를 제일 좋아하신다. 서노는 진딧물이 많은 장미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또 할머니가 진딧물을 없애려고 서노한테 분무기로 농약을 쳐달라고 하는 것이 싫기도 했다. 또 그렇게  별나빠진 장미가 예뻐봐야 얼마나 예쁘겠냐 생각했고, 아랫마을 누이보다도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예쁜 게 뭐 어디 있으랴는 것이다.



어느 여름날 할머니가 수박화채를 해주신다고 읍내에 나가서 수박을 사 오라고 하셨다. 서노는 문간방 김씨의 커다란 짐 운반용 자전거를 빌려 타고 휑하니 읍내로 가서 수박을 한 통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전거는 너무 커서 안장에 앉지 못하고 자전거 프레임 사이로 발을 넣어서 페달을 밟는다.


편하지 않은 운전을 하며 돌아오던 중에 가팔막의 돌서더릿길에서 저전거가 넘어져 보기 좋게 수박을 깨버렸다. 수박의 붉은 속살은 뜨거운 먼지 길에 꽃처럼 늘펀하게 피어났고, 동네 우물 앞에서 빨래를 불쩍 대던 아낙이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본다. 낙심한 서노는 집으로 돌아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할머니는 복숭아를 따다가 설탕물과 얼음을 섞어 화채를 해주셨다. 서노에게 복숭아화채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무도 생 복숭아로 화채를 해 먹지는 않으니 말이다.


철제 중문을 지나 나무로 된 큰 대문을 나서면 바로 여러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아름드리로 자라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다. 가을이면 봄과 여름 동안 시골의 구린 거름 냄새를 은행나무는 용케 잘 모아서 간직하고 있다가 은행의 과육으로 떨어뜨린다. 냄새가 진동하는 은행을 다 털어서 모으면 가마니로 몇 가마가 된다. 동네 아낙들도 나와서 도와주고 바가지로 한 바가지 씩 가져간다.


 

함부로 손으로 만지다가 은행 옻이 오른 아낙은 며칠 동안 얼굴이 퉁퉁 부어서 저팔계 얼굴을 하고 지내야만 한다. 서노는 킥킥거리며 속으로 그랬다. 손으로 함부로 만진 사람들 중 몇몇은 내일부터 꿀꿀거리는 소리를 내며 일주일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라고.


 은행을 담은 가마니는 닭장 앞 두엄자리에 일주일쯤 묻어둔다. 일주일이 지나 은행의 과육이 다 썩으면 우물로 가마니를 가지고 나와 여럿이 밟기 시작한다. 그러면 은행 알만 쏙쏙 빠져나오고, 그것을 우물물을 길어 씻으면 된다.

 


귀신이 염병을 앓다가 싼 똥 냄새일 것이라고 생각한 지독한 냄새를 뒤로 하고, 곱게 씻어 말린 은행은 왕소군의 얼굴이 된다. 곱고 뽀얀 살결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팔려간다. 읍내 상인이 어찌 알았는지 용케 찾아와 철판 띠를 머리에 두른 말과 되를 꺼내어 한가득 씩 재서 모두 가져간다. 아마 은행이 시를 읊었다면 춘래불사춘으로 유명한 소군원삼수(昭君怨三首) 같은 시가 아니었을까.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구나

나도 모르게 옷 띠가 느슨해졌나니

몸이 약해진 때문만을 아니리니


할머니는 그 왕소군을 오랑캐한테 팔아서 서노에게 손목시계를 하나 사주셨다. 서노의 시간은 그 손목시계로부터 느리게 간다. 어차피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시간의 도돌이표  속에 잠시 머물다가 가는 것이니 느리든 빠르든 정확히 가든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서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러브 스토리는 퍽이나 특이하다. 할아버지가 성년이 되어 장가들 나이에 증조부에게 집 살 돈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서울의 효창동에 커다란 하숙집을 하나 장만했다. 할아버지는 가운데 제일 큰 방에 공책만 한 유리를 끼우고, 그 집에 하숙을 하는 숙명 여전 여학생들을 하나씩 훑어보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훔쳐보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크고 마음에 드는 여학생에게 청혼했다.


그 여학생은 본시 평안도가 고향인데 그 여학생의 부친은 금광으로 꽤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평양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금광업자의 딸인 셈이다. 할머니는 키는 컸지만 좀 마른 편으로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며, 눈매가 아주 매서운 데다가 성격은 불같은 분이다.

반면 서노의 할아버지는 평소 말이 거의 없고, 생전 가야 누구와 시 거리 할 일이 없는 성격이다. 어디 시험 볼 것도 아닌데 늘 누런 한지로 된 고서를  읽고, 누구와 친하게 지내지도 않는다. 어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림 그리는 이당 김은호라는 화백 딱 한 분과는 가끔 교류가 있었는데, 할아버지보다는 연배가 십 여세 높았다.


  또 할아버지는 학교는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딱 한번 학교를 간 적이 있었다. 서노의 아버지가 소학교를 입학하려 했을 때 채산리에는 소학교가 없어서 읍내에 있는 학교를 다녀야 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재산을 떼어내서 채산리에 산양 소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개교식에 학교를 가본 것이다. 지금도 그 학교의 교명은  산양초등학교이다.


  할아버지 본인은 늘 독선생이 붙어서 사서삼경을 가르쳤다. 사실 그 혼란한 시대에 사서삼경이 뭐 그리 큰 대수일까 만은. 요즘 같이 스펙을 따지는 시대 같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무학의 학력에 대학 재학생의 여친이라니... 그리고 결혼까지 했다. 다만 서노의 할아버지가 다른 것은 있다. 요즘 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삼남의 갑부 정도는 아니었어도 누대에 걸쳐 당상관을 배출한 양반 자손이니 말이다.  지금 같으면 양반의 족보라면 지나가던 개도 안  물어간다.  할아버지의 부친은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에서 만인 적덕을 했다고 소문이 난 꽤나 유명세를 탄 분이다. 그분에 대해서 논산시에서 발행한 역사문화자료집에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김철수는 강경읍 채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광산이다. 당시에 큰 부자였던 김철수는 그의 집 문간에 30여 평의 객실을 지어놓고 행인들에게 덕을 많이 베풀며 살았다. 호남 지방에서 한양을 왕래하는 길손이나, 서울로 과거를 보러 왕래하는 사람들을 객실에 묵게 하고 열흘이고 한 달이고 숙식을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뿐만 아니라 갈 때는 길손에게 행선지까지의 여비는 물론 신발, 식비까지 주었다 한다.


김철수는 조선시대 이천 군수를 비롯하여 4개 군수를 역임하였고, 지금도 이 지방에서는 물론 먼 곳까지도 만인 적덕 김철수라 부르고 있다. 현재까지도 채운산 아래 김철수가 살던 안채와 사랑채가 남아있다. 논산 시지 2권 756쪽>



바로 이 분이 살던 가옥이 이제부터 이야기할 서노의 또 다른 기와집이다. 걸쇠를 빼고 가로로 지르는 빗장을 잡아당겨 쪽문을 열면, 곰보처럼 녹이 일어난 경첩은 날이 파랗게 선 비수처럼 삐걱거리는 소리를 쏟아내어 전신에 소름을 돋게 한다. 그 소리를 뒤로 하고 쪽문을 나서면 양쪽으로 밭이 있는 조붓한 길이 있다. 그리고 서른 발쯤 떼면 기역 자 모양의 기와집이 나온다. 보통 서노네 집에서 부를 때 이 집을 사당방이라고 한다. 이 집은 적어도 200년은 족히 된 기와 가옥이다.


  원래 있던 사당채는 서노가 태어나기 전 허물어 버리고 이 집을 사당채로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집도 팔작지붕의 기와 틈새마다 매 해 키 작은 파란 풀이 질기게도 돋아나고, 황토 벽은 갈라져서 그 속에 넣은 갈대가 하나씩 드러날 뿐 아니라 나무로 된 문들도 닳고 닳아서 모서리가 없어진 지 오래다. 또 육각형 초석과 화강암 기단에 올린 기둥은 결 고은 나무 색을 잃었다. 200년 가까이 격변과 격동의 근현대사를 지켜봐 온 가슴처럼 이제는 아주 시커멓게 변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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