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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Sep 14. 2018

강경의 느린 구름 아래에서 6


  기와집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가옥 구조로서 기역 자 모양을 하고 있다. 왼쪽 첫 번째가 부엌이다. 세월의 발걸음이 넘나들면서 스치고 스쳐 부엌 판장문의 가운데는 움푹 패어버렸다. 부엌에 들어서면 흙벽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그을음으로 뒤덮여 있다. 아궁이는 여전히 장작을 때는 아궁이이고, 한쪽에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커다란 무쇠 솥과 귀가 부스러지고 올이 터진 광주리가 유령처럼 걸려있다. 또 망각처럼 하얗게 타버린 아궁이 속 잿더미 앞에 타다가 만 부지깽이는 남은 불씨의 기억을 초라하게 지키고 있다.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다져진 흙바닥이 누워있다. 이 흙바닥은 아주 깊어서 오히려 바깥의 마당보다도 한참 낮다. 때문에 부엌에 물을 쏟으면 잘 마르지 않고 한참을 질척거린다. 이렇게 부엌의 바닥을 아주 낮게 설계한 것은 아궁이의 불과 연기가 부넘기를 넘어가면, 거꾸로 내닫지 않고 개자리에 머물게 하기 위한 때문이다.


부엌의 바로 옆에 방이 두 개 있고 그 옆에 대청이 있다. 그리고 대청 옆에 작은 방이 또 하나 있다. 말하자면 어간마루인 셈이다. 주먹만 한 옹이가 여기저기 박힌 대청의 우물 마루판과 대들보는 이제 제 몸을 틈으로 쪼개고 있다. 그 속에는 지나간 시간들이 숨어서 사람들의 흉을 보느라 나무가 쪼개지는 결대로 뒷손가락질을 한다.


여름에는 대청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는 대청 분합문들을 모두 떼어서 서까래에 매달린 걸쇠에 걸고, 까만 모기장처럼 생긴 앙장을 쳤다. 서노는 그 앙장이 대청에 쳐진 또 다른 밤하늘이거나, 저승사자가 입고 다니는 도포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다란 사당방이 있다. 사실 서노는 기와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세한 기억은 별로 없다. 다만 제사와 차례를 지낼 때 사용하였던 대청과 사당방만이 기억날 뿐이다. 사당방은 본래 사랑채였던 듯하다. 화강암 기단이 없었고, 단지 누마루처럼 만들어졌다. 방이나 대청, 툇마루보다 한자 반쯤 높다. 그래서 서노 할아버지가 사당방에 들어가시려면 쓰지 않는 다듬이를 놓아두고 그것을 밟고 올라가시게 했다.


  사당방의 3면은 모두 창호지를 바른 격자 창호인데 침을 발라 살짝 누르면 아주 조용히 밖이 보인다. 서노는 이 짓을 여러 번 하다가 꾸지람을 듣기도 했지만, 꾸지람을 듣는다고 그만 둘 서노도 아니었다. 때문에 그 창호마다 서노의 손자국이 나지 않은 곳은 없었다. 구멍 난 곳으로 통풍은 아주 잘 된다. 서노는 늘 그 통풍을 원하는데 다른 사람은 그 누구도 통풍을 원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늘 남들이 원하는 것만 하고 살 수 없는 일이고, 또 남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서노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창호지를 작게 오려서 수시로 그 구멍을 때웠지만 여전히 그 구멍은 또 생겨났다. 그 구멍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은 서노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였다. 사당방의 문은 들어가는 문을 제외하고 모두 머름대가 있는 분합문으로 되어 있어서 대청 분합문처럼 서까래의 들쇠에 걸어놓을 수 있다. 그러면 3면이 모두 탁 트인 공간이 된다. 하지만 제사 때는 이 문을 모두 닫는다. 그래도 차가운 밤공기는 조각된 향로의 뚜껑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를 한껏 들여 마시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서노가 창호지에 뚫어놓은 구멍이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사당방에는 밤나무로 만든 신주가 모셔져 있다. 까만 제상은 모두 4개. 그 안쪽으로 위패함이 있는데 그 독개를 모두 열면 10위의 위패가 나온다. 어떤 독에는 위패가 둘이 있고 어떤 독에는 위패가 셋이다. 위패가 셋인 것은 상처를 해서 재취댁을 들인 때문이다. 자주색과 붉은 비단으로 만든 신주 덮개를 열 때는 맨 위에 달린 동그란 꼭지를 잡고 올린다. 덮개는 신주 옆에 세워둔다. 그러면 서노의 증조, 고조, 5대조, 6대 조부와 조모가 하얀 나무판에 쓰인 검은 글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얀 신주는 너무 하얗게 보여서 영혼의 색이  본래 흰색이 아닐까 하고  느낄 정도다.


사당 안은 나무로 된 마루였는데, 그것 역시 우물마루 형태이다. 겨울에는 아무리 두꺼운 양말을 신어도 얼마나 발이 시렸는지 서노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데 왜 방석을 깔지 않고 갈대로 만든 자리를 깔았는지 서노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머리가 큰 후에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아무튼 이 기와집에는 서노의 고조부, 증조부가 사셨고, 할아버지가 출생하신 곳이다. 벽에는 몇 가지 현판이 걸려 있다. 그중의 하나를 할아버지는 한두 번 읽어주셨는데, 서노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발이 꽁꽁 얼어서 동태가 되고 있는 마당에 현판에 쓰인 이야기가 뭐가 그렇게 신날 일이라고 귀 담아 들을까.  아무튼 그 현판의 내용은 서노의 고조할아버지가 고조할머니의 환갑을 축하해서 보낸 편지였다. 당시에 편지지에 쓰지 않고 현판으로 만들어 보낸 것이다.


<壽夫人六十一歲>


小春三五日花甲

淑夫人閨內朝廷

儼鄕中風俗淳生

孫慈竹老結子晩

松新司馬斑衣舞

倍思麽織身


癸巳十月雪城守心舵

 

초서로 쓰여진 글이다. 대략의 해석은 이렇다.


<부인의 61세 수에 붙여>

춘 3월 5일 화갑을 맞은

숙부인(정 3품 관리의 부인을 이르는 말)이 집안에서 늘 아침 모임을 갖고

고향의 풍속을 엄전하게 유지하게 하였으며

또 손자를 순조롭게 얻으니,

마치 자애로운 대나무가 늙어서 늦게나마 자손을 얻는 것과 같고

늙은 소나무에 새 순이 돋는 것과 같아서,

나는 지금 사마반의(갑옷)를 입은 채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오.

(고향과 부인) 그리운 생각이 몇 곱절이지만

몸은 맡은 바 임무에 매어 있구려.


계사년 시월 눈 덮인 성을 지키는 심타(고조부의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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