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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13. 2017

전철은 행복할까

9호선의 잊어버린 노래

철길은 행복할까 / 김선호


전철의 브레이크는 약간의 진동을 동반한다. 가슴이 떨리도록 진동을 느끼고 싶은 충동으로 자꾸 눈동자를 치켜뜨는 것은 그저 나이든 자의  주책이다. 생머리가 긴 나이 안든 자의 검은 손톱은 수시로 귀밑머리를 쓸어 10초 간격으로 귀 뒤로 넘겨 올리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상반된  나이가 빚는 이상한 종류의 틱장애 일종인지도 모른다.


동질성은 늙으나 젊으나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고 서로 완전히 이질적일 것은 생각일 것이다.  '싼타라이언'이라는 돼지새끼같은 인형이, 인형 보다 더 비만을 걱정해야할 듯한 여학생의 손에 들려서 늦은 전철의 썰렁함에 동승한다. 싫지않은 느낌은 동심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때문일 지도 모른다.


밤 늦게 귀가하는 전철에서 열심히 손거울 보며 새로 화장에 집중하는 안 늙은 자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정성들여 치장을 하는 것일까. 귀갓길 밤귀신을 놀래주려고 더 귀신같이 화장을 하는 것일까. 하긴 검은 머리카락도 충분히 길고도 길어서 귀신도 어쩌면 놀랄지도 모르는데 거기에다 귀신보다 더 귀신같이 분장하면 진짜 귀신은 아마도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귀여워 죽을 것 같은 커플의 입맞춤이 낯설지 않은 것은 사랑이라는 아름다움이 커플 광배로 작용하고 또 그냥 보기만해도 젊음은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그 시절이 그리워 대리 만족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럴지라도 그것은 예쁘다. 이런 광경을 보고 "어린 것들이 못하는 짓이 없다"고 손가락질하는 나이든 자가 있다면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관뚜껑을 덮어주는 것이 이 땅의 사랑과 평화를  위해서 좋다. Happy deathday to you! 를 불러주며.


급행열차를 먼저 보낸다고 멈춰 선 전철 9호선은 그 언젠가 새마을호를 먼저 보낸다고 한참을 선로 위에 서서 기다리던 비둘기호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 충분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새마을호는 이제 KTX를 먼저 보낸다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절이 왔다. 세월은  새마을호에게도 이른바 무상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기차는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아닌가?  아니면 말고. 하지만 돈이 안되는 비둘기호는 벌써 죽었다. 아니 죽였다.


전철은 비었다가 채워지고 또 김밥의 옆구리처럼 터졌다가 또 메워진다. 여러가지 색의 내용물들이 들락날락한다.


목침으로 손잡이를 냅다 후려치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나이가 들어도 한참 많이 든 여자는 혼자 아무도 못 알아듣는 욕설을 하염없이 지껄이고 있다. 죽도록 힘든 정신의 충격적 변화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정말로 죽고 싶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나 삶이 힘들 때 죽지 못하면 정신이 죽는가 보다. 그것을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미쳤다'고 한다.


무엇을 꼭 이야기하고 어떤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삶이나 글이 꼭 그래야만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버릴 때 차라리 편할지도 모른다. 또 그 풍신나지도 않은 메시지가 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의미가 있어봐야 뭐 얼마나 있을까.  아무 것도 하지않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흔들리는 노란 손잡이는 종점에서 모두 내리는 승객에게 흔들흔들 잘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다.

깊은 에스컬레이터  반대 편에 콩알만한  얼굴이 점차 가까워져 달덩어리만 해지면 서로 얼굴을 돌리고 어색한 발걸음만 재촉한다.


전철의 스크린도어 옆에는 '발빠짐주의'라는 시와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넓습니다'라는 시가 나란히 쓰여있다. 그 옆에 열 줄 쯤되는 이름없는 시인의 시가 문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평행으로만 달리는 궤적일지라도 전철의 철로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그 두 줄 위에 미끄러지는 사각 깡통을 고맙게 이용하는 우리네는 또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뭐 행복할 수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행복이란 바람난 창녀처럼 언제 왔다가 또 언제 훌쩍 가버릴지 모르는 순간의 바람같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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