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의 여인
1. 마리자(Mariza)
이 가수의 노래를 들어보면 참으로 독특한 창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노래를 하는 과정에 입 속에서 노래를 살짝 씹어서 내뱉는 듯하다. 하지만 가사 전달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파두가 갖는 애절함의 표현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낸다. 마리자는 1973년 아프리카의 동남부에 위치한 모잠비크의 수도 Lourenço Marques에서 태어났다. 이때만 해도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아버지는 포르투갈 사람이고 어머니는 아프리카 혈통을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1975년 모잠비크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고 난 그 이듬해 마리자 가족은 포르투갈로 이주해 와서 마리자는 어린 시절을 리스본의 모라이에스와 알파마 지역에서 성장했다. 이 지역은 리스본의 ‘사웅 조르제’ 성 아래의 구 도심지역으로 주로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지상 전철인 트램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언덕인데, 구경거리가 아주 많은 곳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녀도 어려서부터 음악적 소질이 뛰어났었던 모양이다. 가스펠, 소울, 재즈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재주를 보이던 중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파두 가수로 전향한다. 마리자는 한국에서도 아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 이유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 대 포르투갈 전’에서 포르투갈 국가를 불렀기 때문이다. 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에는 그룹 ‘스팅(Sting)'과 함께 주제곡을 부르기도 했다. 마리자는 포르투갈에서도 인기가 있지만 국외에서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때문에 외국에서 수여하는 음악과 관련된 상을 오히려 더 많이 받은 파두 가수로도 유명하다.
마리자의 음반 가운데 가장 명반으로 평가되는 것은 ‘Concerto em Lisboa'이다. 해석하면 별 것은 아니고 그냥 ‘리스본 공연’이다. 이 음반은 포르투갈 말로 ‘Ao - Vivo'이다. 즉 라이브 앨범인 셈이다. 보통 라이브 앨범들은 산만하고 정리가 좀 덜 된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녹음 상태도 좋고 음악성도 뛰어나다. 마리자의 음반 가운데 딱 한 장을 고르라고 하면 서슴없이 이 음반을 권하고 싶다.
2. 둘스 퐁티스(Dulce José Silva Pontes)
포르투갈 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참 난감할 때가 가끔 있다. 묘한 그들의 발음 때문이다. 글자 위에 돼지꼬리 같은 것이 붙은 것, 스펠링 위에 삿갓을 씌워 놓은 것, 또 대가리에 점을 붙이고 있는 것 등 다양하다. 뿐 만 아니라 ‘~Nho'를 꼬랑지에 매달고 다니는 단어 등도 있다. 둘스 퐁티스가 부른 대표적인 노래 ‘깐사웅 두 마르(Canção do Mar)'가 바로 이런 돼지꼬리를 머리와 다리에 달고 다니는 경우이다. c에는 돼지꼬리가 다리에 달려있고, a에는 돼지꼬리가 머리에 달려있다.
둘스 퐁티스는 1969년 생으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의 근처인 Montijo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피아노 교육을 받았고 성장해서는 배우가 되었다. 이후 매치 플레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복면가왕’ 비슷한 파두 경연대회에서 8번 승리를 거두고 파두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 당시 가장 높은 성적이 4회 우승이었는데 둘스 퐁티스는 8번이나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로서 그녀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포르투갈 대표로도 나가게 된다.
그녀의 음악 성향은 과거의 파두 그대로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파두를 현대적으로 진화시켜서 부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실험적 파두’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그녀는 컬래버레이션 음반이 비교적 많다. 때문에 아프리카 섬나라 까보 베르데의 가장 유명한 가수인 에보라(Cesária Évora)와 함께 낸 음반을 비롯해서, 브라질의 밥 딜런이라고 칭하는 까에따노 벨로주(Caetano Veloso), 맹인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를 비롯한 많은 가수들과 함께 음반을 내기도 했다. 그 가운데 가수가 아닌 영화음악의 대가 이태리의 엔리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와 함께 낸 음반은 컬래버레이션 음반의 백미로 꼽힌다.
그러나 파두적인 측면에서 볼 때 둘스 퐁티스의 음반 가운데에는 그녀가 처음 낸 음반이 가장 전통적인 파두에 가깝고 또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명반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음악이라는 것이 본질에서 좀 벗어나서 다른 시도를 할 때에는 처음 듣는 이에게 왠지 낯설고 이상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즉 파두를 들으려고 하는 애호가들에게는 실험적 파두가 좀 불편하고 또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의미이다.
3. 기셀라 조아웅(Gisela João)
포르투갈은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성당이 많다. 그 가운데 커다란 산 전체가 성당으로 이루어진 ‘봉 제수스 두 몬테(Bom Jesú S Do Monte : 산에 있는 예수)’라는 성당은 그중에서도 아주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 성당은 포르투갈의 북부지역에 위치한 브라가(Braga)에 있다. 브라가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종교적 수도이다.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도시였던 이곳은 브라카라 아우구스타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이 브라가에는 성당만 70여 개가 있다.
기셀라 조아웅은 바로 이 브라가 인근의 Barcelos에서 태어났다. 1983년생이니 서른서넛 정도 된 나이이다. 그녀는 포르투갈 북부지역의 명문대학인 뽀르뚜(Porto) 대학에 재학할 때는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기셀라 조아웅은 이때 오히려 파두에 빠져들어서 6년 동안 파두를 집중적으로 노래한다. 이후 리스본으로 옮겨와서 본격적인 파두 가수로 전향하게 된다. 그녀는 알파마와 모라이에스 지역의 파두 하우스에서 주로 노래를 불렀고 점차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언론에서 “혜성 같은 파두 가수가 탄생했다”라고 대서특필하면서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2년 동안 그녀는 데뷔 앨범 ‘Gisela João’을 냈고 국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두는 시기였다. 이 앨범은 한동안 포르투갈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고 최우수 신인 파두 가수에게 수여하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상(Prémio Amália)도 수상하게 된다. 이후 그녀의 파두 하우스 공연은 주로 리스본의 벨렝 지구(벨렝 타워와 제르니무스 수도원이 있는 테주강 주변 지역)의 대형 공연장에서 이루어졌고 모두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뽀르뚜에서의 공연도 대성공을 거두는 한편 프랑스, 영국, 벨기에, 브라질, 스위스, 스페인 등 외국의 초청공연도 이어졌다.
기셀라 조아웅의 파두는 대단히 낮은 음역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특징이 있다. 마치 막걸리 두어 사발쯤 마시고 한이 맺혀서 부르는 노래처럼 말이다. 또한 자잘한 기교보다는 진정성의 호소력으로 승부하는 가수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그녀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파두를 들으면 아주 나이 든 가수처럼 느껴진다. 너무나도 묵직하고 낮은 음역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녀는 많은 음반을 내지는 않았고 지금까지 두 장 정도가 전부이다. 이 두 장중에서는 머리에 무슨 이상한 종이를 둘둘 말아 얹은 모습의 첫 음반보다는 2016년에 발매한 ‘NUA'라고 이름 붙여진 음반이 첫 앨범보다는 곡의 완성도를 비롯해서 녹음 상태에 이르기까지 훨씬 나은 듯하다.
<세계음악 컬럼니스트 김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