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남편보다 좋은 이유

by 강소록

내 나이 오십이 넘은 중년이 되니 없던 증세가 하나 늘어났다.


뒷목에 열이 확확 오르며 땀이 차는 것이다. 이 증세는 덥기 전 봄부터 시작이 되었다.


짧았던 머리 기장이 이제는 제법 자라서 하나로 간신히 묶을 수 있어서 망정이지, 그대로 늘어뜨리고 있었다면 그냥 미용실로 직행해 커트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검은 고무줄로 쫑쫑 머리를 묶고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딸애는 학교를 안 간대서 아마 오후 다 돼서 일어날 것이고, 아들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며 새벽밥을 먹으려고 일어났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아침 다이어트주스 식사로 새벽부터 믹서기 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필 남편이 TV에서 건강프로그램을 보고 다이어트주스로 한 달 새 10킬로 감량한 사례를 봐서 나를 이렇게 매일 단호박을 찌도록 만들었다.


어찌 됐든 장도 튼튼 다이어트도 성공하면 그만 아닌가.


이렇게 내 건강과 외모를 신경 써주는 좋은 남편이 이상하게도 에어컨을 트는 걸 그렇게 싫어한다.

심지어 에어컨을 틀면 끄고, 내가 나가면 바로 꺼서 오히려 전기세가 더 나오게 된다.


무풍에어컨이라 사용법을 저온 18도에서 강풍으로 틀었다가, 26도까지 서서히 올린 후 약하게 계속 유지하라고 했는데도, 기회만 되면 끄기에 바빴다.


내가 '여름엔 에어컨이 남편보다 더 좋다. 그러니까 에어컨을 질투해야 할걸'이라고 해서 그랬을까.


지금도 남편은 선풍기 바람도 미풍으로 틀어 놓은 채로 노트북을 보며 공부 중이다.

나는 안방에서 무풍에어컨을 시원하게 쐬며 글을 쓰고 있는데 말이다.


무슨 개미와 베짱이도 아니고, 선풍기와 에어컨의 대결도 아닌데, 갑자기 남편이 짠해지는 건 왜일까.


남편의 에어컨을 끄는 모습에서 예전 아버지들의 전깃불 끄는 모습이 비쳤다.

우리 아빠도 역시 맨날 전등을 끄느라 바쁘셨다.

그것은 우리네 아버지들이 일터에서 팍팍하게 일하며 가족을 위해 수고한 노고를 엿볼 수 있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힘들게 일했으니 전기세 나가는 것이 혈세 나가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나도 이제 일주일에 하루 이틀쯤은 에어컨을 틀지 않고 선풍기만 붙잡고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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