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드라이빙 스토리

아들과 딸 라이딩 스토리

by 강소록

지금은 회사원이 되었지만, 아들이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할 때, 근무지인 행정복지센터까지 내가 차로 날라 데려다주었다.

하필 교통이 좀 불편한 지역이라 아들의 편의를 생각해서, 출근시간 동안만이라도 좀 더 눈을 붙이라고 내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아들과 오롯이 대화하는 그 시간이 나는 너무 좋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랬더니 아들이 음악은 들으면서 내 말은 안 듣고 싶어 하며, 조용히 가고 싶대나.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면서도 내심 서운했다. 그리고 생색이 올라왔다.

그래서 자식은 배반의 장미라고, 배반하는 존재로 여기면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고얀 놈.


이번에는 둘째로, 대학 4학년인 우리 딸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확실한 신념과 주관을 갖고 학교를 그만두더니, 곧바로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수능과 실기까지 단번에 합격했다. 결국 또래와 같이 4년제 대학 문예창작과에 들어간 셈이다. 무서운 돌아이다.


그런데, 쉽지만은 않았다. 집 근처에 글쓰기를 배우는 학원이 마땅한 데가 없었던 것이다.

별 수 없이 남편과 내가 교대로, 신사동에 있는 학원라이딩을 여섯 달 동안이나 했다.

둘 다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도.


학원까지 오고 가는 길이 고속도로에다 밤길이라, 처음에는 두려웠다.

하지만, 나중엔 그 라이딩이 고속도로 주행연습이 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지금은 가끔 드라이브 삼아 고속도로를 달릴 정도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가족들과 강화에 놀러 갔을 때, 아들과 비 오는 밤에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에 뜨거운 물 받아 차에서 음악 들으며 호호 불으면서 먹었던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먹었던 컵라면과, 아들과 나눈 따뜻했던 온기는, 지금 괘씸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기를 띠며 웃는 따뜻한 미소로 돌아오곤 한다.


모솔인 딸이랑 엄마인 내가, 연인처럼 가끔 신나게 드라이브도 하고, 내가 딸을 졸라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다. 19금은 물론 빼고. 우리가 다닌 쇼핑몰과 영화관과 산책로와 공원이 바로 우리들의 천국이었다.


우리 아들과 딸 모두 엄마 욕심과 상관없이 쑥쑥 꿈과 재능 키워서, 일도 사랑도 멋지게 할 거라 믿는다.


삶에 지쳐 넘어지거나, 지친 다리로 쉬고 싶을 때, 라이딩스타는 언제든지 아들과 딸을 지키기 위해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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