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정규 교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것, 가르치는 것에 대한 미련이 있어 3개월 전부터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로서 부업을 하기 시작했다. 현장 수업 경험은 거의 처음일뿐더러 초등이 아닌 중등교직자격을 취득한 자로서 초등학생에 대한 이해는 전무한 채로 초등학생들을 모아둔 교실에 들어간 것이다.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는 말은 나 같은 자를 두고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2개 반 7주 차 수업, 총 14번의 초등학생 대상 수업을 해보고 깨달은 점이 있다. 아이들은 아주 정직해서 재미가 없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코 성인들처럼 참아 주지 않는다. 만약 어린아이가 재미가 없어도 과제를 수행한다면 그것은 공포와 위협의 상황에 놓여 있을 때이다.
어린 나이에 성인을 공포와 위협의 대상으로 생각해서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보다는 말썽 좀 피우더라도 자기표현이 확실한 아이들이 더 건강해 보인다. 이것은 내가 소위 ‘말 잘 듣는 아이’였기 때문에 좀 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말 잘 듣는 아이의 내면은 핑크빛이 아닐 수가 있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즉 학교에 들어가기 전, 나는 아주 활발한 아이였다고 한다. 100% 기억나는 것은 아니고 어렴풋한 기억과 어른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조합해보면, 예를 들면 길 가다가 아는 어른을 만나면 달려가 와락 안기곤 했다고 한다. 아빠가 어릴 적 찍어 준 비디오를 보면 웃긴 표정과 몸짓을 하며 열심히 재롱을 부리는 장면도 있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는 친척집에서 거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귀엽다고 난리를 치기도 했다. 아무튼 선천적으로 얌전한 아이는 아니었던 거 같다. 그랬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갑자기 변했다. 나는 초등학교 내내 ‘조용한 아이’로 통했고, 모두가 떠들고 있을 때 조용히 앉아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사탕을 하나 더 주기도 했다. 다만 나는 학년을 마칠 때마다 반별로 1명씩 칭찬스티커를 가장 많이 모은 학생에게 주는 ‘표창장’을 받기 위해 애썼고, 스티커가 나만큼이나 많은 친구들을 경계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핑크빛도 아니고 노란빛도 아니고 회색빛이 지배적이다. 실제로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학교 복도는 차갑고 딱딱한 회색빛이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무엇이 7-8세 되는 아이를 갑자기 긴장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이때부터 고착화되었을 어떤 심리적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 아마 지금도 완전히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PYP에서 강조하는 학습자의 필수적 태도는 주도성(Agency), 자아효능감(Self-efficency), 행동(Action)이다. 즉, 학습자는 스스로가 학습 주체이고, 강한 정체성과 자기 신념으로 학습을 주도한다. 이러한 학생 행위 주체성(student agency)은 OECD 2030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다. 어린아이들은 신체적으로 약하고 성인들에 비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취약하다. 따라서 어른들은 쉽게 아이들을 보다 하위의 존재로 여기고 대하기가 쉽고, 그렇게 되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그러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며, 자신이 놓인 세상은 불안한 곳으로 간주하여 의존적이고 순종적으로 되기가 쉽다. 따라서 어린아이일수록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당당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교육은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이를 위한 PYP 학습자의 학습활동 3요소는 자신의 목소리(Voice), 선택(Choice), 주인의식(Ownership)이다. 질문하기, 안내하기, 주도하기, 제안하기,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등의 활동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키우고, 학습목표 달성에 대해 스스로가 책임자가 됨으로써 중요한 사항들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다. 학습목표를 정하고, 자신의 학습목표 성찰하도록 하는 등 학습계획과 행동에서 학생들의 생각을 지지함으로써 주인의식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앞서 아이들은 아주 정직해서 재미가 없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활동들이 아이들에게 재미가 있을까? 이건 아주 어려운 문제이다. 물론 베테랑 선생님들에게는 비교적 쉽겠지만, 초보 교사로서, 일반적인 성인의 시선에서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어떤 활동이 재미있을지 없을지 예측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는 게임을 해서 경쟁심을 부추긴다든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외적 보상물을 제공한다든지, 재미있는 노래나 동작을 한다든지,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콘텐츠를 보여준다든지 등의 당장의 쾌감을 자극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고, 물론 이런 요소들을 수업에 잘 녹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활동 전체가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고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학습자는 진정한 호기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PYP 및 초등학교 교육과정의 역할은 어떤 배움과 활동이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에 의미 있다고 인식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맞는 언어로 전달하고 이해하게끔 하는 것이고 이러한 아이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잘하는 데에서 초등교사의 전문성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PYP에서는 각 학문 및 교과가 학습자들에게 어떻게 의미 있는지를 바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다. 대신 PYP에서는 학문적 지식에 대한 학습 그 자체보다는 학생들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실제적 맥락 속에서 전통적 교과들 간 경계를 초월하여 학습내용을 탐구하고 기능을 습득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PYP는 범교과 주제에 해당하는 6가지 초학문적 주제를 설정하고 있다. 6가지 초학문적 주제는 세계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들로, 또한 초등학생 아이들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들로, 아래 여섯 가지에 해당한다. 초학문적 주제들은 PYP에서 각 학습내용을 통합 및 적용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는 누구인가(Who we are)
우리는 어느 시간과 공간에서 사는가(Where we are in place and time)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가(How we express ourselves)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How the world works)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조직하는가(How we organize ourselves)
지구를 공유한다는 것(Sharing the Planet)
‘우리는 누구인가’의 주제는 자아의 본질에 대한 탐구, 신념과 가치, 개인적,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건강, 가족, 친구, 공동체, 문화를 포함한 인간관계, 권리와 책임,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 등을 다룬다. ‘우리는 어느 장소와 시간에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주제는 장소와 시간의 관계에 대한 조사, 개인자, 집과 여행, 인류의 발견, 탐험과 이주, 지역적, 세계적 관점에서 개인과 문명의 상호 연결성 등을 다룬다.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한 주제는 생각, 감정, 자연, 문화, 신념 및 가치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 우리가 성찰하고 우리의 창의성을 확장하고 즐기는 방법, 미학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감상 등을 다룬다.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의 주제는 자연계와 그 법칙에 대한 탐구, 자연계(물리적 및 생물학적 세계) 간의 상호작용과 인간사회, 인간이 과학적 원리에 대한 이해를 사용하는 방법, 과학과 기술 발전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조직하는가’는 인간이 만든 시스템과 공동체의 상호연결성에 관한 연구, 조직의 기능, 사회적 의사결정, 경제활동 및 그것이 인류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 주제 ‘지구를 공유한다는 것’은 유한한 자원을 타인과 공유하기 위한 경쟁에서 권리와 책임에 대한 조사, 인간과 다른 생물들과의 공존, 공동체와 내부 구성원 간의 관계, 평등한 기회에 대한 접근, 평화와 분쟁 해결에 대해 다룬다. IBPYP 학교에서는 매년 이 6가지의 초학문적 주제를 중심으로 학년별 통합 단원을 구성하고 있고, 각 국가나 지역의 교육과정 역시 위 여섯 가지 범교과 주제로 교육과정의 재편성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과의 교육내용은 이 초학문적 주제에 따라 교과 교육내용 프레임워크로 가능하며, 통합의 기반이 되고 있다.
출처: http://fa-ib.weebly.com/elements-of-the-pyp.html
출처: https://www.ejce.org/archive/view_article?pid=jce-25-2-59
이러한 활동을 통해 주도성을 갖는 PYP 학습자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게 된다. 아이들은 사고, 계획, 수정, 창조 등 학습의 모든 단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토론과 질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기주도적으로 프로젝트나 놀이를 창작하고 구성함으로써 개념에 대한 이해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과거의 경험을 자신의 놀이 세계로 가져옴으로써 현실 세계와 연결한 기회를 갖고, 학급 공동체에서 적극적인 목소리와 이해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도전에 직면하고 시행착오 또는 실험을 통해 실패를 독립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세계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표현하고 환경에서 존경을 받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스스로 규제하며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IB를 이야기할 때 주로 대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고등학교 과정인 IBDP를 가장 먼저 이야기한다. 실제로도 IB 교육과정은 DP과정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고 MYP와 PYP는 한참 뒤늦게 그 필요성에 의해 고안되기도 했다. 그런데 IBDP를 먼저 접하면 우리의 교육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고등학생이 갑자기 비판적 사고를 하고, 철학적 문제를 고민하고, 논문을 쓸 수 있을까? 물론 나조차도 고2 때까지 잘못된 공부방법에 치우쳐 있다가 고3이 되어서야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갑자기 패러다임을 바꾸었던 것처럼, 아이들은 유연하기 때문에 다른 교육을 받다가도 얼마든지 IB에 투입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학교 과정인 IBMYP, 초등학교 과정인 IBPYP를 들여다보면 IBDP의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교육이라는 데에 고개를 더욱 끄덕이게 된다. 교육학도로서 가까운 미래세대에는 어린아이들이 정말로 성장 과정에서 현재는 즐겁고, 미래는 밝은 삶을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 교육에 새로운 신드롬을 가져올 IB 교육과정을 계속해서 공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