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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Oct 18. 2024

그가 이리도 예민하고 성숙한 줄은 몰랐다

발리 신혼여행 일곱째 날, Ubud

 오늘은 전세택시를 예약해 두었다. 한인교회도 다녀오고 여기저기 다녀오려 한다. 드라이버는 원래대로 8시부터 투어를 시작하자고 했지만, 우리는 여행 중에 그리 시간 맞춰 일찍 일어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예배 시간이 11시인데 거기에 맞춰 가고 싶었다.


나는 왠지 전날 밤부터 교회에 간다는 것이 몹시 기뻤다. 놀러 가는 것 보다도. 그리고 교회에 도착했을 때 나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어떤 고향에서 벗어나 있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간 그런 느낌이었다. 결혼을 하여 부모의 품을 떠나 남편이라는 지체를 챙겨가며 그 기간 사실 조금은 힘이 들었던 걸까?


그저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순둥순둥한 강아지인 줄 알았던 남편은 사실 꽤 예민둥이였다. 결혼 준비 전에는 정말 몰랐던 모습이다.


한인교회에서 점심을 얻어먹었는데, 일주일 만에 김치를 먹은 남편은 번쩍 힘을 냈다.


발리한인교회 주보와 얻어 먹은 점심




예배를 마치고 Penglipuran village에 가서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도 찍었다. 시간이 안 되어 가고 싶던 미술관은 가지 못했지만, 대신 택시 기사에 의해 반강제로 루왁커피 농장에 가서 여러 가지 커피 시음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좋았다. 그곳의 커피는 무척이나 비쌌는데 그래도 딱 한 가지, 독특했던 아보카도 커피만 하나 샀다.


전통의상 체험을 할 수 있는 Penglipuran village와 커피 시음회


그리고 택시 빌린 김에 슈퍼마켓에서 선물 좀 찾아보려 했는데 슈퍼마켓 물가도 무척이나 비싼 것이었다. 치약이 5천 원 정도였던가... 이 나라 사람들은 월급이 30만 원이 안 된다는데 대체 어디서 뭘 사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 섬에 대체 몇 개의 세계가 공존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첫 번째 슈퍼마켓에서는 아무것도 못 사고, 두 번째 슈퍼마켓에서 선물용 커피만 조금 샀다. 좀처럼 쇼핑을 잘 안 하는 그에게 맞추어 손 큰 내가 이리도 작은 손이 되었다. 아마 그래도 그는 내가 많이 산다 생각할 것 같다.




집에 와 씻기 전에 수영장엘 들어갔다. 수영장 속에서 그는 나를 업고 빙빙 돌며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우리의 진로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언제나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나에 비해 그가 얼마나 성숙하고 깊게 생각해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신의 생각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해 주니 그는 인정을 받았다며 기뻐했다. 그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 나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는 존재임을 여러 번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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