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과 북한산 둘레길 콜라보 2

제8-3구간, 만추의 우이암과 왕실 묘역 길

by 약천

어제가 입동이었으니 바야흐로 겨울도 머지않았다. 사람들은 김장을 하기 시작하고 동면하는 동물들은 굴을 파고 숨는다는 절기다. 인제 7877부대로 배치받은 아들도 긴 겨울을 견뎌야 할 것이다.

아침은 부지런한 사람들의 세상이다. 집을 나설 때 어두컴컴했는데 전철이 청담을 지나 한강 위 철교를 지날 때 어느새 태양이 떠올라 햇살이 강물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가을이 한창 무르익었을 도봉산 산행을 가는 길이다. 도봉산역에 도착해서 친구 M과 합류했다. 도봉서원 기점을 출발해서 문사동 계곡의 거북골에서 주능선으로 올라 도봉암을 거쳐 하산 후 서울 둘레길 제8코스를 따라 도봉역으로 회귀할 요량이다. 도봉의 가보지 않은 능선과 미완의 서울 둘레길 8코스의 콜라보인 셈이다.


경사진 계곡 옆 절집 구봉사 일주문은 여느 시골집 대문처럼 아담하다. 아미타불을 모신 지붕이 낮은 무량수전과 요사채, 그리고 소박한 종각이 전부인 사찰이다. 본당 옆 높은 기단 위에 앉은 금빛 금동 약사여래가 낮은 담장 밖으로 전신을 드러내고 있어 작은 절집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망월사 계곡, 무수골 계곡과 함께 도봉산 3대 계곡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문사동 계곡은 ‘스승에게 묻는 곳’이란 뜻의 '問師洞' 초서체 세 글자가 새겨진 큼직한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단풍과 어우러진 기암에 눈을 팔며 도봉의 품속으로 한 발 두 발 발을 옮긴다. 두리번거려도 이정표가 가리키는 '거북바위'는 보이지 않고 동굴처럼 보이는 거대한 넓적 바위 아래 깊숙이 숨어 있는 거북샘을 만났다.


1987년 자연보호중앙협회와 경향신문 공동 선정 '한국의 명수(名水) 100선'에 올랐던 샘인데 지금은 물이 말랐고 더군다나 '음용 부적합' 안내문도 붙어 있다. 당시 기사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맑고 맛있는 물이며 경제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보전해야 할 곳"이라는 염원이 물거품이 된 듯 보여 안타깝다.

도봉산 구봉사(좌), 도봉산 우이암(우)

거북골에서 주능선으로 치고 오르는 길은 발을 옮길 때마다 고도가 성큼성큼 오르는 가파른 길이다. 주능선 오봉 갈림길에 올라서니 오른편으로 자운봉과 신선대 등 웅자한 정상 암봉들이 눈에 들어온다. 암봉 너머 보이지 않는 두 해 전 가을 찾았던 망월사, 포대능선, Y계곡 등은 그대로일 것이다.


주봉에서 뻗어 내린 오봉능선이 햇빛을 받아 새빨갛게 타오르고 있다. 다섯 형제와 고을 원님의 외동딸에 얽힌 전설을 간직한 암봉들이 능선 위에 나란히 자리한 모습이 신비롭기만 하다.

도봉 주능선 남쪽 끝 봉우리인 우이암에는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은 산객들이 휴식을 취하며 도봉의 단풍과 멀리 북한 수락 불암 등 이웃 산들의 수려함에 취해 있는 듯하고, 귀여운 고양이들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보시를 기대하며 태연히 배낭을 내린 산객들 옆으로 모여든다.

우이암에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다. 계단을 올라오는 산객은 힘겨운지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쉰다. 우이암 암벽을 클라이머 셋이 오르고 있다. 선두 두 명이 자일을 잡고 오르는 후발 크라이머를 연신 독려한다. 저렇게 자상하고 능숙한 멘토가 있는 인생은 행복할 것이다.


한참 동안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면 거대한 암봉 아래 원통사가 자리한다. 신라 경문왕 때인 864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원통보전, 약사전, 삼성각을 비롯해서 태조 이성계의 기도처였다는 나한굴이 있다. 경사면을 따라 층층이 자리한 전각으로 오르내리는 계단 옆과 암벽 틈새에 만개한 프랜치 매리골드가 사찰 밖 단풍과 어우러진 모습이 조화롭다.

우이암 매표소로 내려서며 도봉산을 빠져나와 도봉산우이역에서 도봉산역까지 서울 둘레길 8구간의 잔여구간으로 접어들었다. 이 구간은 북한산 둘레길 세 구간인 왕실 묘역 길, 방학동길, 도봉옛길과 겹친다.

왕실 묘역 길을 따라가며 원당샘 공원, 연산군 묘, 정의공주 묘 등을 둘러본다.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 묘와 더불어 세종의 둘째 딸로 한글 창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정의공주의 묘는 대군과 공주에 걸맞은 규모와 격을 갖추고 있어 보인다.

원통사(좌), 방학동 은행나무(우)

연산군 묘역 앞 주위에 온통 노란 은행잎 융단을 깔고 고고하고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800년이 넘었다고 하고 어떤 조사에서는 수령이 600년 남짓이라고도 한다. 서울특별시 보호수 제1호로 지정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가운데 한 그루이니 도읍지 서울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보았음에 틀림없다.


600여 년 전부터 파평 윤 씨 집성촌의 생활용수였다는 원당샘은 급격한 도시화로 한때 물이 말라버렸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2011년 지하수를 끌어올려 샘을 복원하고 연못, 꽃담, 정자 등을 설치하여 공원화했다고 한다.

능선을 넘고 무수골을 지나 산행 기점이자 우이암과 서울 둘레길의 길림길로 내려서며 도봉사에 들렀다. 고려 광종 때인 968년 혜거 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라는데 콘크리트 2층 건물인 대웅전을 비롯해서 경내의 석탑과 석조물들은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뒤 능선 위 호랑이 등에 앉은 산신령 석조 조각상이 산신각을 대신하고 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능선을 뒤덮은 단풍의 융단과 그 위로 우뚝 솟아 있는 도봉의 암봉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 저번 산행 때 들렀던 능원사를 패스했다.

도봉천 위로 놓인 통일교를 건너 도봉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서 산계를 벗어났다. 문을 열고 상품을 진열하며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던 이른 아침의 한산한 모습과는 달리 상인들, 산행을 마친 산객들, 행락객 등으로 북적인다.

군밤, 어묵, 전어 양미리 꽁치 도루묵 구이, 밴댕이 무침, 도토리묵, 닭발, 막걸리 등이 눈과 코를 유혹하는 좁고 긴 먹자골목을 빠져나와 도봉산역으로 향한다. 도봉 남부 능선과 서울 둘레길 8코스를 완결하니 뿌듯하기도 하지만,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가을이 제격인 도봉을 찾아온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2019-11-09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