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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Oct 12. 2020

계절이 지나는 하늘에는

퇴근 후 S와 함께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인 소박한 저녁을 들었다. 손에 쏙 들어오는 330ml 빈 생수 페트병에 정수기 물을 담아 들고 숙소를 나와 자유공원까지 저녁 산책을 나섰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성당 첨탑처럼 길고 뾰족한 지붕을 가진 모텔 앞을 지나고, 늘 밤늦은 시각까지 불을 밝히고 있는 옷 수선집, 좁은 골목에서 큰길로 나가는 출구 쪽에 있는 '전라도 막 횟집', 노인복지관, 율목도서관, 성산교회를 거치고, 웨딩 가구거리, 신포 지하도, 내리 교회를 가로질러 홍예문 윗길을 따라 자유공원에 닿았다.

S로부터 승진자 명단이 공지되었고 우리 과 S와 K 모두 그 명단에 들어 있다는 전화를 받은 것은 자유공원에서 가을 기운이 완연한 공기에 온 몸을 내맡기려던 참이었다. 걷기에 좋은 저녁이다.


승진자 리스트에 올라 있는 사람과 오르지 못한 사람은 모두들 결과에 스스로 수긍을 할까? 분명 어떤 이는 낙담할 터고 또 '억수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모두가 쏟은 노력과 쌓은 공에 상응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기를 바라면서 '功到自然成'이라는 말로 모두에게 위로와 축하의 말을 대신하고 싶다.

숙소로 돌아와 TV를 켜고 Y방송사 뉴스를 들었다. 계절 늦게 몰아닥친 18호 태풍 '차바'가 남부지역을 강타해서 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속보를 전하고 있어 안타깝다.

윤동주의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이 가득 차 있는데, 우리 곁 가을의 길목에는 운과 불운이 뱉어내는 안도의 긴 날숨 낙망의 한숨이 한데 섞여 낮게 포복하고 있다. 동주의 시에서 처럼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한 계절이 되길 고대해 본다.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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