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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25. 2020

송월동 동화마을 밤마실

맛, 향, 색깔 그리고 동심

수요일, '가정의 날'이다. 직장에서 별다른 일 없으면 일찍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내라 배려하는 날이지만 주말부부인 내겐 숙소로 돌아가도 가족이 없다.

해가 길어져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도 밖은 여전히 훤하게 밝다. 날씨도 더없이 좋다. 숙소로 돌아와서 가벼운 옷을 갈아입고 생수 한 병을 들고 산책을 나섰다. 해광사 후문으로 난 높은 돌계단을 올라 해광사 경내를 한 번 둘러보고 율목공원, 성산교회, 답동성당을 차례로 가로질렀다.

숙소를 나서면서 마음속에 목적지를 동화마을로 정해두었었다. 건널목 대신에 신포 지하상가를 통해서 내리 교회 쪽으로 걸었다. 간간이 스마트 폰 지도 앱에 방향을 의지해서 송월동 동화마을로 향했다.

홍예문 위쪽 골목에서 자유공원으로 들어서서 맥아더 장군 동상, 등대 조형물,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을 거쳐 송월동으로 가는 길은 눈과 발에 익어 일사천리다.


세상의 모든 동화 캐릭터들을 모두 모아 놓은 듯 동화마을은 좁은 골목마다 담벼락이 비좁아 보인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친구끼리 또는 연인끼리 두세 명씩 짝지어 온 젊은이들이 드문드문 눈에 띌 뿐 한산하다. 간간이 모녀나 노부부들도 눈에 띈다.

나이가 들어서도 떠날줄 모르고 내 육신에 깃들어 사는 궁금증과 호기심은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과거로 돌아가 동심이 발동되었는지 골목골목 하나도 놓치지 않고 둘러보자며 걸음을 보챈다.


"GUESS" 동심의 나래 또는 상업자본의 유혹?


귀엽거나 앙증맞거나 우스꽝스럽거나 능청스럽거나 심술 굿거나 또는 기괴스러운 온갖 동화 속 주인공들을 그림이나 조형물로 되살려 놓았다. 반면, 체험 공방은 비어서 폐허처럼 방치되었고 놀이마당은 문을 닫았고 거리도 한산하다. 그 속을 드문드문 거니는 방문객은 걷기는 편해도 마음속엔 철 지난 해수욕장을 찾은 듯 왠지 씁쓸하고 스산한 기분이 든다.

동화마을 후미진 골목길 구석에 쓰레기를 담아서 내다 버려진 쇼핑백 속의 여인, 상반신을 드러내고 입은 반쯤 벌린 채 엎드린 농염한 모델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동화처럼 기발한 상상의 나래라도 펼쳐보라는 듯 "GUESS"라고 채근하며... 마음속 동심이 깜짝 놀라 멈칫한다.


겪어보지 않으면 좀체 알 수가 없는 것이 사람의 됨됨이나 성격이다. 겉포장이나 광고에 의존해서 고르게 되는 상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선택의 기회도 주지 않고 호기심이나 성적 감성 등 인간의 본성을 비집고 들어와서 소비욕구를 돋우어 주머니를 훔치는 자본주의를 탓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담벼락에 그려져 있는 도깨비가 튀어나올 것 같이 희미한 가로등 불빛의 을씨년스러운 골목길을 지나서 동화마을 초입 자유공원 가장자리로 되돌아왔다.


송월동에서 동인천역 방향을 향해 걸었다. 화평동으로 넘어가는 화평운교를 앞두고 도로 건너편 찻집에서 짙은 재스민 차 내음이 건너와서 코끝을 간지럽힌다. 파견근무로 2년간 머물렀던 북경, 통상 물 대신에 재스민 차를 내놓는 그곳 어느 식당에서 시공을 넘어 흘러나오는 듯 후각에 각인된 내음이다.


시공을 초월해서 발동한 동심처럼 미각이나 시각, 또는 후각 등의 감각도 기억을 태우고 먼 과거로 거슬러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인지도 모른다.


동인천역 앞에서 신포시장 부근까지는 거리마다 오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신포시장 점포들은 대부분 하루 장사를 마감하고 셔터를 내렸다.


작년 이맘때쯤 웨딩 가구거리를 지나 참외전로 입구 담벼락에 활짝 폈던 장미가 생각난다. 그 장미는 올해도 겨우내 꼭꼭 눌러 감추어 두었던 비밀을 빨간 꽃잎으로 고백했을까 궁금하다.


눈부신 오월이 다 가기 전에 빨갛게 피었을 장미에게 눈인사라도 한 번 하러 가야겠다. 수요일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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