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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19. 2020

일광 서정(日光 抒情)

봄날 저녁, 자투리 여행

어스름 녘에 부산교대 역에서 동해선 전철로 갈아타고 종점인 일광(日光) 역에서 내렸다.


일광은 오수영의 소설 <갯마을>의 배경이자 '낭만가객'이라 불리는 가수 최백호가 초등학교를 다닌 곳이기도 하다. 퇴근 후 객지 생활의 적적함을 달래 보려는 심사도 있었지만, 마침 지난주 B일보에 일광 면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려 꼭 한 번 가보리라 생각했던 터였다. 자칭 '도시 항해 팀 선장'인 L 기자가 갔던 여정을 따라 일광을 탐방해 보기로 했다.

소설 <갯마을>과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태어난 곳


제법 북적이던 전철 객실은 해운대역을 지나고 송정, 오시리아, 기장을 지나면서 헐렁해지고 종점인 일광 역에서 내리는 승객은 열댓 명 남짓이다. 복선으로 개통되면서 새로 들어선 크고 번듯한 역사는 한창 진행 중인 주변의 택지개발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기장에서 울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일광은 서쪽 뒤로 일광산, 달음산, 월음산을 등지고 앞쪽으론 달항아리 같은 원만한 품으로 동해를 끌어안고 있는 포구 마을이다. 일광역 앞 도로를 건너면 아홉산, 함박산, 천마산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달음산과 월음산이 만드는 골짜기의 지류를 끌어안고 일광 읍내를 지나 동해 이천포로 흘러드는 일광천이 놓여 있다.

전철역에서 가까운 이천교 대신 상류 쪽에 놓인 이천가화교를 건넜다. 낭만가객의 사진과 노래 '낭만에 대하여' 가사, 그리고 오수영의 소설을 각색해서 1965년 개봉한 영화 '갯마을'의 몇몇 장면들이 다리 난간과 보도 위에서 눈길을 잡는다. 초승달이 머리 위에서 따라 걷고 아파트 불빛은 일광천에 드리워졌다.


일광천 옆 가마골소극장은 1986년 부산에서 창단한 ‘연희단거리패’가 여러 연극들을 실험하며 성장한 곳이라 한다. 설립자가 '미투(Me too)'에 휩쓸려 활동이 위축되었으련만 건물 1층 카페 '양산박' 유리창에 소속 단원들의 연극을 알리는 포스터가 두어 장 붙어 있다.


이천교 다리 동단에서 동쪽으로 난 일광로를 따라 좌측으로 찐빵 집 서너 곳을 지나면, 바다 돌 산지로 유명해서인지 수석(壽石) 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중 문이 열린 한 곳으로 들어가니 늙수그레한 두 분이 나누던 얘기를 잠시 그치고 찬찬히 둘러보게 배려해 주신다.


수석(壽石) 속 잠수하는 해녀(海女)


하나같이 검은색 바탕의 아이 주먹 크기부터 머리 크기의 모가 나지 않은 둥근돌들이다. 날개를 활짝 펼친 갈매기, 구름이 떠 있는 하늘과 검은 바다를 가르는 수평선,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 다도해,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바닷속 등 하나하나 몸체에 특이한 문양이나 색깔을 품고 있어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중 어떤 돌 하나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쌍떡잎처럼 두 갈래로 갈라진 무늬가 인어의 지느러미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래쪽 사선으로 뻗친 팔처럼 생긴 무늬는 바닷속으로 막 잠수하는 해녀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난 데 하나 없이 둥글둥글 불빛에 반짝이는 수석들은 영겁의 세월 동안 파도에 시달리고 닳아 무덤덤한 껍질 속에 갇혀있던 빛나는 자신의 속 모습을 찾았을 것이다. 수집가들 또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발품을 팔아 저 돌들을 여기 한 곳에 모을 수 있었을지 가늠할 길이 없다.

한국유리 높은 굴뚝을 보며 오른쪽 이천 항으로 향했다. 골목길 저편으로 불빛을 머금은 바다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잔잔한 포구의 바닷물은 선창에 와서 참방 대고 어항의 비릿한 내음이 온몸으로 확 덮쳐온다.


바다를 향해 좌측의 방파제 위에서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 사이로 강태공 한 분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 좋지 않은 경기 탓에 바람이라도 쏘일 겸해서 해운대에서 왔다는데, 그가 건져 올린 아이 손바닥만 한 우럭 한 마리로 울적한 마음이 위로가 될런 지 모르겠다.


이천 항 방파제 초입에 불 꺼진 해녀복지회관이 우두커니 서있다. '갯마을'식당 옆에 서있는 소설 <갯마을>의 현장임을 알리는 작은 표지석은 지나치고 말았다. 일광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에 놓인 강송교를 건너기 직전 포구 어귀에 있는 식당 주인은 식기를 씻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어묵 서너 개로 출출해진 배를 달래면서 주인 할머니와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소설 <갯마을>의 주인공 해순이가 그랬던 것처럼 아직도 이곳 포구엔 물질을 하는 해녀가 열 명 남짓 될 거라는 얘기다.


강송교를 건너니 오른편에 오수영 문학비가 서있고 바다를 향해 길게 난 방파제는 이천 항과 일광 해변을 가르마 한다. 해변 모래사장에 내려서니 순한 파도가 찰방찰방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되풀이한다.


해변에서 길가로 향해 뒤돌아서는데 가지마라고 붙잡는 듯 파도소리가 높아지며 귓전을 울린다. 여름철 한때 피서객들이 가득했을 해변은 텅 비었고 해변도로에 늘어선 카페들에는 청춘 남녀들만 너 댓 명씩 모여 앉아 그들만의 얘기를 나누고 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사장이 끝나고 바다로 불쑥 내민 산모퉁이의 얕은 오르막길을 돌면 학리다. 마을 입구 표지석은 350여 년 전에 형성된 마을로 학이 많이 서식해서 학리(鶴里)라 이름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삼성리 해변과는 달리 학리 해변은 곧장 절벽과 맞닿아 있어 접근이 어렵고 불빛도 없는 칠흑의 바다다. 불빛이 없는 검은 바다 멀리에서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의 우레 같은 소리가 위압적이다.


"세상 흐름을 따르자니 얼굴이 부끄러워짐 어찌 하리오"


방파제가 파도를 막고 있는 학리 항은 방파제 위에서 강태공 대여섯 명이 검은 바다에 낚시 줄을 던져 놓고 있을 뿐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되돌아서서 일광해수욕장 쪽으로 향했다. 일광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다가 마을에서 복개되어 덮인 삼성천이 해변에서 다시 모습을 보이는 곳에 무지개다리가 놓여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오는 길에 보지 못했던 삼성대(三聖臺)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사방이 투명한 통유리창인 카페 옆 해변과 도로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2~3미터 높이 야트막한 둔덕, 도로 쪽 그 언저리에 자리한 표지석과 윤선도 시비(詩碑)가 없었더라면 이곳이 삼성대인 지 알 수가 없지 싶다.

삼성대의 유래가 된 세 성인(三聖)이 누구냐를 두고 환인 환웅 단군, 원효 의상 윤필, 또는 이색 정몽주 이숭인 등 여러 설이 있다고 한다. 시비에 새겨진 고산(孤山)의 시 두 수는 유배지 기장으로 그를 찾아온 동생과 1621년 8월 이곳에서 이별하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네 뜻을 따르자니 새로운 길 얼마나 많은 산이 가로막을 것이며
세상 흐름을 따르자니 얼굴이부끄러워짐 어찌 하리오
이별할 때가 되니 천 갈래 눈물이
너의 옷자락에 뿌려지며 점점이 아롱지는구나
<贈別少弟 일부, 1621. 윤선도>


최근, 윤선도의 <어부사사사> 배경이 17년간 유배지였던 전남 보길도 일대뿐 아니라, 이곳 기장도 포함된다는 학계 주장이 있었다. 1618년 11월부터 6년간 기장에 유배되었고 문장 여러 곳에 기장지역 관련 구절이 있다고 하니 새삼스럽지도 않다.


무지개다리 부근 지나갈 때 보았던 터진 상수도관에서는 여전히 물이 쏟아져 올라 차도 위로 넘쳐흐른다. 가게들 영업에 방해되지 않게 10시가 넘어야 공사를 시작한단다. 해변로를 벗어나 일광 역 쪽 방향으로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파도 소리가 골목 깊숙이까지 따라오며 객에게 작별을 고한다.


전철역으로 가는 큰길을 건너기 전 이천교 앞에 있었다던 <낭만에 대하여>의 그 다방,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이 반겨주던 '그야말로 옛날식' 그 소라 다방은 4년 전에 문을 닫았다니 아쉽고 섭섭하다. 초승달은 여전히 하늘 높이 해맑게 떠서 가을 외기러기 같은 나그네의 길동무를 자처한다.

오수영 원작, 김수용 감독의 영화 <갯마을>(1965)
"달음산 마루에 초아흐레 달이 걸렸다. 달그림자를 따라 멸치 떼가 들었다.
데에야 데야. 드물게 보는 멸치 떼였다."


내일모레가 초아흐레이니 소설 <갯마을>의 말미처럼 반달이 뜰 테지만 철 지난 바다에 멸치 떼는 몰려올 리 만무할 것이다.

다만, 달빛을 쫓아 몰려드는 멸치 떼처럼 포구에 어린 낭만과 소설처럼 잊지 못할 추억을 찾는 나그네들의 발길만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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