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은 부산 도시철도 가운데 하나다. 도심 부전역에서 시작해서 교대 벡스코 신해운대 기장 등을 거쳐 일광역까지 이어진다. 2016년 말 개통된 이 전철은 폭이 넓고 구간 대부분이 지상이라 열차를 탄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날 친구 닝(寧)을 만나러 부산 전철 동해선을 타고 송정역으로 향했다. 십사 년 전 북경 파견근무 때 많은 도움을 준 그는 시성(詩聖)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로 유명한 후난성(湖南省) 웨이양(岳陽) 출신이다.
송전천에 낚싯줄을 드리운 아이들
송정 역사(驛舍)는 번듯하고 널찍한데 타고 내리는 승객이 많지 않아 시골 기차역처럼 한산하다. 역장이 개찰구 앞까지 나와서 역사를 빠져나오는 승객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너른 대합실 저편에서 다가오는 닝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북경에서 일 년 가량 같이 근무한 후 그는 방콕 UNEP로 옮겨갔고 나는 2005년 말 중국에서 귀국했다. 그 후 닝이 한국을 방문하거나 내가 방콕에 갈 때마다 잠깐씩이나마 얼굴을 본 것이 너 댓 번은 되었다.
작년 늦가을쯤 마지막으로 본 것 같은데 예전 모습 그대로 미소년같이 해맑은 얼굴이다. 팔월이면 기장에 있는 한국 사무소로 온 지 두 해가 된다는데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해서 다행이다.
양달산과 구곡산 사이 계곡에서 발원해서 바다로 흘러드는 송정천을 따라 얘기를 나누며 바닷가로 발길을 옮겼다. 주변 건물은 낮고 야트막한 산들이 뒷동산 마냥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다.
송정천이 바다에 접한 곳에서 소년 둘이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물속에 낚시 줄을 던져놓고 있다. 미끼통에 새우만 그득하고 어망은 비어있지만 찌를 응시하는 모습은 자못 진지하다.
송정 항을 아늑히 둘러싼 방파제 양쪽 가장자리에 하나씩 서있는 빨간색과 흰색 등대가 인상적이다. 그 사이로 낚싯배 한 척이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귀항하고 있다. 방파제 너머 바다로 낚싯줄을 드리운 낚시꾼은 '도다리가 가끔씩 올라온다.'라고 했다.
바다로 툭 튀어나와 송정 항과 송정 해수욕장을 경계 짓는 봉긋 솟은 죽도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피서철엔 인파로 붐볐을 테지만 봄이 한창인 저녁나절 송정은 산책 나온 주민들만 드문드문하다. 텅 빈 백사장 너머 파도에 실려 온 진한 바다 내음이 온몸을 점령할 듯 밀려와 코 속을 가득 채웠다.
옛 송정역은 1934년부터 2013년 12월 동해남부선 철로 이설공사로 폐쇄될 때까지 기적이 울렸었다고 한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철거의 운명을 비켜 시민 갤러리로 모습을 바꾸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산의 예술인 김채석은 옛 동해남부선에 얽힌 추억을 멋드러지게 회상하기도 했다.
"송정과 미포 사이를 달리며 바라본 바다 풍경은 스치는 장면마다 움직이는 활동사진이요 명화가 따로 없었다." <영화부산 vol.20, 김채석>
옛 송정역 옆 기장미역국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전복 가자미 미역국'을 한 그릇씩 시켜서 들었다. 미역과 함께 가자미 두 토막과 전복 두 개가 든 진한 국물에 닝도 만족해했다. 가장 토속적인 것이지만 깊이가 있는 맛은 인종이나 국경을 넘어 통하기 마련인가 보다.
우산과 닝이 건네준 녹차 '악양모첨(岳陽毛尖)'을 양손에 들고 함께 송정역까지 걸었다. 거리는 조용해서 귀 기울이면 파도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아쉬움에 다음을 기약하며 닝과 악수를 나누고 역사로 들어섰다. 운행 간격이 넓어 인적 드문 플랫폼에서 이십 여분을 기다려 동해선 전차에 올랐다.
茶香高山雲霧質 水甛幽泉霜雪魂 "높은 산 안개 구름이 키운 차 향기롭고, 그윽한 샘 눈 서리 혼 배인 물 다디다네"
녹차 봉지에 쓰인 글을 보니 그윽한 맛의 차향이 미각과 후각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스프링(spring)처럼 튕겨 일어서려는 영과 육의 감성과 감각을 달래고 잠재우려는 듯 무심히 봄날(Spring) 밤이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