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들여다보니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가 코앞에 와있다. 월요일 집을 나설 때 아내가 챙겨준 도톰한 솜이불 때문인지 이전처럼 몇 번이고 이불을 당기고 여미며 잠을 설치지는 않아도 되었다.
돔형 유리 천장에 말발굽 모양으로 한가운데 공간이 툭 터인 복도식 빌라, 인천항 1 부두와 큰길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직원 관사에는 스물대여섯 명의 직원이 거주한다. 305호, 너 댓 평 남짓 숙소는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다. 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화장실 오른편에 싱크대와 머리 높이에 붙박이 찬장이 자리하고 맞은편엔 남쪽으로 난 미닫이창이 있어 숨통을 트여준다.
지난 주말에 슬며시 조짐을 보이다가 주초에 찾아와서 사흘째 떠나질 않는 감기몸살로 몸은 거의 녹다운 직전이다. 가래 기침 두통 코 막힘 콧물 발열 등에 잘 듣는다는 서 너 가지 약으로도 앓음은 잦아들지 않았다. 퇴근길은 비도 조금씩 흩뿌려 파전에 막걸리가 제격이다 싶은데 몸이 용납하려 않는다.
마침 수제비가 구미를 당겨 저번 눈여겨보아 둔 숙소 부근 신흥동 골목집 식당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그 식당은 문이 닫혀 있어 부근 ‘맛나 식당’으로 들어갔다.
너른 방에 4인용 식탁이 예닐곱 놓인 그 식당은 주로 점심 손님이 많단다. 이른 저녁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 혼자다. 화천이 고향이라는 77세 주인 할머니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인천으로 왔더란다.
추천해 주는 대로 백반을 시켰는데 황강달이 구이, 멸치볶음, 파래 볶음, 미역국, 콩나물무침, 김치, 동그랑땡 등 오천 원에 반찬이 한 상 푸짐하다. 처녀 시절 수원에서 새마을 지도자 교육을 받았을 때 찍었다는 빛바랜 사진 속 할머니는 훤칠한 키에 곱고 시원스러운 얼굴이다.
방적공장 작업반장, 새마을 지도자, 동네 이장 등을 두루 맡았다는 젊은 시절의 무용담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얘기에는 당신의 전성기 때 근대화의 주역으로서 녹록지 않았을 세월을 당당히 헤쳐 왔다는 자랑과 자부심이 스며있다.
할머니의 백반은 식당 이름처럼 수수하고 맛나다. 처음 온 손님에게 친할머니처럼 살갑게 다가와 건네는 옛 얘기들은 색다른 반찬처럼 구수하기만 하다. 인정이라는 조미료가 들어가야 음식도 제 맛이 나나보다. 초가을 저녁 객지에서의 단출한 저녁밥이 주인 할머니의 무용담이 곁들여져 호사롭다. 가족과 떨어진 객지에서 한적한 식당 할머니의 살가운 얘기를 독차지하며 홀로 때우는 저녁밥은 결코 서글프지 않다.
약에 젖어 빠진 잠을 새벽에 모기가 깨웠다. 귀뚜라미 소리가 창밖 이른 새벽을 가득 채웠다. 처서를 지나면 입이 비뚤어진다는데 모기 한 마리는 아직 입을 잘 건사했나 보다. 이번 여름에는 어디로 들어왔는지 매일같이 한두 마리의 모기가 숙소 방에 출몰하곤 했다.
모기는 저녁에는 몸을 숨기고 있다가 주로 새벽 서 너 시를 전후해서 활동을 개시했다. 오늘 새벽 단잠을 깨운 녀석도 막 새벽 세 시가 될 무렵 내 발등을 물었다. 전등을 켜고 짧게는 수 분, 길게는 시간을 넘겨가며 숨고 찾고 쫓고 쫓기는 수색전과 추격전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내게는 다행이요 모기에겐 불행이겠지만 이번에는 간이침대 발치 벽에 앉아있던 그놈이 내리치는 신문지를 피하지 못하고 벽에 내 피를 토해내놓았다. 그 피는 선홍빛으로 선명했다. 잠시 ‘내 몸속에도 저처럼 붉은 피가 돌고 있었구나’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쉰 고개를 넘어선 지도 서너 해가 지났다. 모기가 잠잠하여 잠을 설칠 일이 없는 날인데도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과 대면하는 불면의 날도 많아졌다. 오늘도 문득 깬 잠을 다시 눕혀 재우지 못하고 새벽을 맞았다.
불쑥 잠에서 깨어 침대에 누운 채로 어렴풋한 꿈을 되살려보려 애써보아도 그 잔상은 멀어져만 간다. 그러다가 문득 아련하게 떠오른 먼 옛 기억을 더듬거나 다가올 일들에 대한 부질없는 상상으로 머리가 번잡해지기도 한다.
지금도 별반 차이가 없지만 돌이켜보면 내 불혹은 가을날 흔들리는 마른 갈대와도 같았다. 바른말에 귀 기울이고 옳은 일에 힘쓰기보다는 달콤한 말에 쉬이 마음을 빼앗겼었다. 익숙하고 편한 것에 이리저리 몸을 내맡기고 번거로운 일은 애써 외면했었다.
지천명을 지난 지금도 천명은 고사하고 지나온 날들에 대한 자괴감과 다가올 날들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리기 일쑤다. 그것은 '어떻게 살까' 보다는 '무얼 먹고살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온데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곧이곧대로 믿을 것은 아니지만 요즘 세대를 소위 '백세 시대'라고들 말한다. 기실 얼마 전에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3.1세라는 한 연구팀의 연구결과가 있었다. 세론을 만들어내고 이끄는 매체나 사람들이 검증된 진실인양 “백세 시대가 도래했다”라고 하는 말은 억지에 불과하다.
아직 ‘백세 시대’는 미래에 거는 희망사항이다. 또 질병 없이 건강하게 정상적인 활동을 하면서 살 수 있는 행복 수명은 74.9세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백세 시대'는 과장도 너무 부풀려진 과장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만인의 바람을 서로가 암묵적으로 용인하며 사용하는 구호인 셈이다.
억지춘향으로 백 번 양보하여 백세 시대라고 하면 이제 반환점을 갓 돌아선 것이 된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홀연히 지나가 버린 날들처럼 앞으로 날들이 그저 그렇게 지나가 버리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인다.
그래서 '어떻게 살까'라는 물음이 빡빡한 일상의 틈새로 불쑥불쑥 질문을 내던지곤 하는 모양이다. 인생 코스의 반을 앞만 보며 허겁지겁 달려왔으니, 남아 있는 반은 뒤도 돌아보며 성찰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그침이다.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이라 노래한 시인, 청마처럼 나도 더 늦기 전에 내 고독한 노래의 씨앗을 부지런히 땅에 묻어야 할까 보다. 낯선 손님에게 지난날 자신의 초상을 자랑스레 얘기하던 종심(從心)을 훌쩍 넘긴 ‘맛나 식당’의 할머니처럼 부끄럽지 않은 내 초상을 위해서 말이다.
머리는 아직도 지끈거리지만 가래와 기침은 잦아들었다. 자기 전에 먹은 알약들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화단에는 대추나무 감나무가 긴 여름 내내 노심초사 보듬으며 키워낸 소담스러운 열매가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가을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