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가 신곡과 새로운 삶에서 표현한 베아트리체(Beatrice Portinari)에 대한 사랑은 중세의 궁정풍 사랑(courtly love), 나아가 플라토닉한 신적 사랑의 전통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단테에게 있어 베아트리체는 단순한 연애 감정의 대상이 아니라, 영적 구원의 길잡이이며 신의 사랑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작품 속에서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실제 인물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는 결혼한 여성이었고, 단테와 특별한 인간적 관계를 맺었다는 역사적 증거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테가 표현한 사랑은 실제 여성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이라기보다는, 이상화된 존재에 대한 숭배에 가깝습니다. 베아트리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단테의 사랑은 실생활에서의 친밀함이나 감정 교류가 전제되지 않은 일방적인 감정의 투사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녀가 단테에게 연인으로서의 감정을 가졌을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오히려 단테의 정신적·철학적 추구의 매개체로 활용된 인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단테의 사랑은 스토킹에 해당하는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한 인물이 타인에 대해 일방적이고 집착적인 감정을 오래 간직하며 그것을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테의 시대는 전혀 다른 문화적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중세 유럽의 궁정풍 사랑은 접근할 수 없는 이상적인 여성을 숭배하는 방식이었고, 이는 여성과의 실질적 관계보다는 정신적 순결과 자기 수련을 중시했습니다.
스토킹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지속적이고 불편을 주는 감정적·물리적 침해를 말하지만, 단테는 베아트리체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거나 그녀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그에 대한 감정을 문학적 형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스토킹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결론
단테의 사랑은 현대적인 연애 감정과는 거리가 있으며, 베아트리체가 그 사랑에 상응하는 감정을 가졌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단테는 그녀를 통해 자기 영혼의 정화와 구원을 추구했고, 이는 중세 신학과 철학의 문맥 속에서 보면 높은 정신적 사랑으로 해석됩니다. 오늘날의 스토킹과 구분되는 점은 바로 상대방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았으며, 감정의 표현이 문학적·신학적으로 정제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단테의 사랑은 일방적이지만 경건하고, 인간적이기보다는 신적인 차원에서 구현된 감정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