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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JOJO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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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브로라 Aug 26. 2022

JOJO 9화

‘꽃’


내가 보는 조조는 시멘트 바닥에 올곧이 피어난 민들레 꽃 같았다. 제주의 바닷바람을 맨얼굴로 맞으면서도 척추를 세우고 담대한 꽃. 나는 조조의 한 잎 한 잎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나도 너처럼 어여쁘려나.”


사실 내게 ‘꽃’이라는 단어는 수치스러운 단어였다. 나는 꽃을 받으면 벚꽃 같은 환한 미소로 감사를 전하 고선 이내 모가지를 떨군 목련처럼 앞으로 꽃 같은 거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내게 온 꽃들은 잊힌 휴양지 모텔의 인테리어용 조화처럼 먼지가 수북이 쌓여 쓰레기통에 처박히곤 했다. 나는 혼자 웃고 있는 꽃이 싫었고, 그 아름다움을 선물 받을 자격이 없는 내가 수치스러웠다.


“어릴 때 우리 집에 함께 살던 친척 오빠는 나 때문에 매일 울었어. 나는 정말 나쁜 아이였거든. 콩쥐 팥쥐에 나오는 팥쥐처럼 심보가 고약했는데 특히 믿음을 잃은 남자에게 한없이 악마 같았어. 책임감 없던 아빠의 영향으로 남성성에 대한 신뢰가 없었고 그로 인해 가장 은밀한 관계 안에서 가장 쉽게 피로감을 느꼈던 거야.


덕분에 난 남자 때문에 상처받아 본 일이 없어. 혐오가 전제된 관계 안에 ‘온전한 사랑’이 있을 리 만무했으니까. 그래서 불행했어. 사랑이 부재된 관계는 모래성보다 쉽게 흔들렸고 혼자서도 충분히 오롯할 수 있다는 믿음에 한계가 왔을 때, 무너진 축을 기댈 수 있는 곁이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결국 나를 망친 건 남자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어. 엄마를 괴롭힌 남성성을 벌하려고 평생 누군가를 혐오하는 마음과 한 집에 살았으니까.


그래서, 내가 가장 어려운 게 ‘관계’야.

나는 내 경계를 넘어오면 가족이라도 용납이 안되거든. 특히, 가족의 걱정을 핑계한 평가나 충고가 폭력적으로 느껴져.


어린아이들에게도 자의식이 있고 모든 인간은 개별적인 존재인데 함부로 ‘안다’고 생각하는 게 불편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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