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은 뒤 아슬아슬하게 미열이 차올랐다.
조조는 내 붉어진 뺨에 손등을 올려보더니, 대시보드를 뒤져 타이레놀 두 알을 꺼내 줬다.
“살결이 닿는다는 건 무엇일까?
유난히 손이 작아, 나는 두 손으로 핸드폰을 쥐고 타이핑하는데, 가끔 핸드폰을 감싼 오른손에 내 왼손이 포개지고 그때마다 이상하게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아. 내 손이 내 손에 닿았을 뿐인데 이쪽 손에서 저쪽 손으로 전해진 ‘온기’ 때문에 ‘사랑’의 유사 감정을 느낀 거야.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 어쩌면, 어떤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착각’이 아닐까? 하는..
조조, 너에게 사랑은 무엇이야? “
미세한 입자의 안개비가 나리는 용눈이 오름을 오르며 조금은 혼잣말처럼 나지막이 물었다.
“그래, 네 말처럼 어떤 사랑은 착각일 수도 있겠네.
현실을 왜곡하는 묘사를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라쇼몽’의 기법처럼 인간은 각자의 에고이즘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하곤 하니까.
하지만 만약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면 숨길 수 없어. 마치 재채기처럼 말이야.
내게 있어 사랑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태양과도 같아. 애써 빛을 가리고 숨어도 온통 내 몸에 와서 묻어버리고, 한 줌에 움켜쥐려고 해도 밤이 되면 어김없이 사라지는.. 놓을 수도 잡을 수도 없는 태양.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꽃이 열리듯 모든 감각이 피어나고, 그때 경험하는 모든 예술, 이를테면 음악이나 영화 그리고 문학 작품들은 개인 고유의 감각으로 각인되어 영혼의 피와 살을 만드는 양분이 돼.
나이가 든다는 건 뭔가 잃어버리는 일의 연속이야. 그래서 우리는 더욱 사랑을 놓으면 안 돼. “
꿈결 같은 안갯속에도 오름의 능선은 한 폭 수묵화처럼 끝없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