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조의 트럭을 타고 해안도로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 주인은 크롬색 에스프레소 머신 위로 층층이 쌓여있는 따뜻한 커피잔을 꺼내 하트를 그려 카페라떼를 만들고 있었다.
카페 안에 울리는 달그락거리는 접시 소리와 한 번씩 울리는 그라인더 소리, 증기에 젖은 커피 가루를 탁탁 두드려 필터에서 꺼내는 소리,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듯 <올라퍼아르날즈>의 august가 흘러가고 있었다.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면 나는 그와 함께 깊은 심해를 유유히 헤엄치는 범고래가 된다. 가장 낮은 하늘에 누워 우주를 한 움큼 들이 마시고, 뱃속에 있는 낡고 어지러운 낱말들을 뿜어내는 범고래.
모르핀을 맞으며 잠들어 있을 때도 그랬다. 마치 꿈이 현실 같고 현실은 환상처럼 느껴졌다. 진통제에 취해 잠들어 있던 병실 문을 열고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 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빼던 촉감, 그리고 빈손을 조심스레 잡고 기도하던 아주 먼 곳으로부터 도착한 한 남자의 실루엣.. 그날의 모든 기억은 어쩌면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게도 아빠가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게도 모든 두려움 속에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
카페 주인이 내려준 파나마 게이샤의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자 여름 비에 얼었던 몸이 얼음처럼 녹아내렸다. 나는 두 손을 포개어 커피잔을 감싸고 있는 조조의 하얀 손가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큰 수술을 했었어. 그리고 지금의 나는 수술하기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멀어져 있고. 그때의 내가 무지개 각각의 색에 매달려있었다면 지금은 쿨 톤에서 웜 톤으로 지나가는 것을 어떤 것을 조금은 여유로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이렇게 보니, ‘비극’은 무수한 텍스트 사이에 잠시 머무는 쉼표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나는 건강을 잃고 난 뒤에 건강의 소중함 보다, 사랑의 본성을 알게 되었어. 내게 부족한 하나가 바로 사랑이었고, 사랑만이 내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전이라는 것도.
마친가지로 돈을 잃고 난 뒤에 알게 된 것 또한 돈에 대한 절실함이 아니라 사랑이었어. 신은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려고 건강도 돈도 잃게 한 거야. 그리고 이건 신의 농락이기 이전에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 같은 거 말이야.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온통 사랑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니까. 그래, 머리로는 잘 이해하고 있어.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사랑만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 특히 나에게 시련을 주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그 사람만 없으면 내 인생이 호수처럼 잔잔할 것 같아서.”
“시련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야. 인간은 자기가 극복할 수 없는 단계의 시련을 만나야만 나라는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니까.
두려움은 생각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야. 두려움은 생각과 감정이 잠가둔 방의 목소리야. 내 속에 있는 진짜 나야. 그래서 너에게 오는 시련은 너를 깨우기 위한 네 안의 목소리고,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목소리야. 그게 네가 한 세계를 깨고 나올 열쇠가 될 테니까.”
https://youtu.be/bTfDcUgzP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