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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JOJO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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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브로라 Aug 26. 2022

JOJO 14화


“나에게 암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어...


극한의 궁지에서도 더 들어갈 궁지가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나약함을 배우기에 충분했거든. 날 때부터 완전하다고 믿었던 나란 존재는 한낱 미물에 불과했던 거야.


바닥에 납작 엎드려 바라보는 세상은 더없이 아름다웠어. 나를 낮추고 보니 더 이상 하대할 것이 없었고, 나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고 보니 세상은 존경할 것으로 가득했어. 감사할 것뿐이고 사랑할 것뿐이더라.


불자는 아니지만 그 길로 당장 가까운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시작하기로 했어. 그래도 혹시나 나의 무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그래도 사찰예절은 숙지해야 했지. 예를 들어 법당에 들어갈 때는 중앙의 어간 문을 이용하지 않고 법당 좌우 측면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구나. 스님을 대할 때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합장 반배를 하는구나... 하는 것들 말이야.


하지만, 기본 예법이 어리숙해도 백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해 보니 정신이 맑아지고 어깨를 누르던 짐들이 떨어져 나간 것만 같았어. 그렇게 백일기도가 끝나고 회향하는 날 나는 이런 기도를 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게 해 주세요.’


내가 왜 그런 기도를 했을까. 더 대단한 소원도 많았을 텐데.. 어이없게도 그 소원이 이루어진 거야.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을 쉽게 미워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도 않아.


사람들이 화를 참지 못하는 순간이 ‘기본 상식’도 없는 무례한 타인을 마주쳤을 때야. 하지만 그 기본 상식은 누구의 기준일까.


깨달은 자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깨달았다는 생각이야. 그 생각의 바닥에는 나는 알고, 너는 어리석다는 전제가 깔려있어. ‘안다’는 생각이 사람을 판단하게 하고 판단은 미움의 씨앗을 만들어. 그래서 애초에 완전한 깨달음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어.


내가 유일하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죽음뿐이었어.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말이야.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지금까지 나를 옥죄어왔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생존본능을 위한 온갖 욕구와 욕망이 신기루처럼 무너져 내렸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살아도 괜찮고 살지 않아도 괜찮았어. 잘 살아도 괜찮고 잘 살지 않아도 괜찮았어. 함께 있어도 괜찮고 혼자 있어도 괜찮았어. 욕망을 잃은 자는 바람처럼 자유로웠어. 아무리 촘촘한 그물을 드리워도 걸릴 것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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