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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07. 2021

송화

고향집에 차를 반납하러 가는 길에 미세먼지가 심하니 외출을 삼가라는 알람이 계속 날아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름의 미세먼지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이 동네는 이맘때쯤 꼭 샛노란 하늘을 맞이한다. 소나무 꽃가루가 날리면서 만들어 낸 하늘이다. 그래도 혹시나 미세먼지의 비율이 높지 않을까 싶었지만 자동차의 유리에 강원도에서 맞고 왔던 빗물에 송화가루가 노오란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확실히 봄이 오고 가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이었다.


청소하기에 참 귀찮고 창문도 열기 힘든 귀찮은 존재이지만 송화가루엔 추억이 있다.

할머니는 소나무 꽃이 피기 시작하면 꽃을 따다가 말리거나 직접 털어서 송화가루 모으셨다. 모아놓은 송화가루에 들어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면 샛노란 가루가 가득해졌다. 워낙 고아서 잘 만져지지도 않았다. 실은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가 잘 만지지 못하게 하셨다.

모아진 송화가루는 잘 보관했다가 제사나 명절이 되면 상에 올라갔다. 당연히 가루가 아니라 다식이 되어서였다. 꿀을 섞어서 반죽을 만들고 나무로 된 다식 틀에 꾹꾹 눌러서 쏙 빼주면 맛 좋아 보이는 다식이 완성된다. 다식 틀은 요즘 많이 쓰이는 초밥 틀과 원리가 같다.

사실 다식은 만드는 것만 재미있고 맛은 별로였다. 어린애 입맛에 들어맞을 리 만무했다. 지금은 찾아먹기가 더 어려워졌다.


할머니는 첫째인데 딸로 태어난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 본인은 첫째가 딸이었음에도 둘째 아들의 첫째가 딸인 것은 용납이 안 되셨다보다. 그래서 난 할머니한테 더 잘했다. 같이 살진 않지만 가차이 살았으니 미움받기 싫어서였을거다. 돌아가시기 전에 멀리 사는 내 안부를 그리 물으셨다는 말에 '그러게 진작 좀 예뻐해 주시지.'라는 생각이 먼저 난 것을 보면 나도 속까지 착한 손주는 아니었다.

할머니가 정정하실 땐 때마다 다식도 하고 귀밝이술도 담그고 한과도 만들고 하며 24절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웠다. 마을과 가정에 노인이 없어진다는 건 역사와 지혜를 잃는 것이라는 걸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을 걸.


이 시대에는 미세먼지로 오해받는 송화가루가 날린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던 할머니가 오늘은 조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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