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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14. 2021

대신해줘!

민원들 _1

* 일하면서 받았던 수많은 민원들을 나열해 봅니다.


민원 전화가 왔다. 첫마디부터 취한 목소리라서 경계가 되었다.

불법 건축물이 있고, 건축폐기물을 불법 매립까지 했다고 한다. 불법 건축물은 이미 시청에 신고해서 '강제 철거 대상 후보지'가 되었다고 했다. 다만 사람이 다칠 수 있어서 함부로 철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을 지제체에서 받았다고도 했다.

해당 건축물이 철거 대상 되기는 했지만 집행이 되지 않기에 해결하고 싶다길래 혹시 건축폐기물 불법 매립에 대한 부분을 신고했느냐고 물었다. 아직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부분을 먼저 신고하시고, 관련된 답변이 오면 강제철거와 묶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민원을 넣는 방법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다.


그랬더니 대뜸 환경단체는 뭐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지자체에 얘기한 게 해결이 안 되어서 연락했더니 지자체에 신고하라고 했다면서, 지자체의 하청이냐 지자체가 하라는 대로 하는 곳이냐, 당신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냈다. 전화를 그냥 끊을 수도 있었지만 인내를 갖고 들어줬다.


"선생님 같은 민원이 한 두 건이 아닌데 저희는 환경민원의 대리인이 아닙니다. 도움을 청하러 전화하신 거면서 비난하시는 선생님과 제가 왜 선생님하고 계속 통화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 와중에 계속 선생님이라고 하고 있었다. 하아...)


그랬더니 그럼 시민단체가, 환경단체가 하는 일이 뭐냐, 존재의 의미가 뭐냐 같은 원론적인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원론적인 질문엔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덧붙여서 민원인이 해결을 원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렸는데 어떤 것을 더 바라는 것이냐 물었다.

그리고 치트키를 던졌다. "저희 회원이세요?"

몇 백이 되는 회원들의 민원도 전부 해결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움 하나, 관심 하나 없는 비회원의 어거지를 더 듣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자연스럽게 전화를 종료하려고 대화를 시작하려는데... 민원인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왜 월급 받고 일합니까?"

"네? 선생님 저한테 월급 주세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도 '대신해줘'를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과 왜 대화를 하고 있고, 왜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것인지 짜증이 솟구쳤다.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통화를 종료하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으나 끊지도 않았다. 대놓고 원하는 것이 뭐냐는 물음에 답은 안 하고 또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했다. 대놓고 대신해달라고 하시는 거냐니까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너희는 하는 게 뭐 냔다. 다시 원점이다.

선생님과 왜 통화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10번은 넘게 한 것 같다. 해결할 방법을 설명해주고, 환경단체 욕을 하고, 폄훼하고, 비하하는 도돌이표도 10번은 한 것 같다. 사무실 전화를 핸드폰으로 돌려놓은 죄로 출근도 못하고 거의 한 시간을 붙잡혀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걸 좋아한다. 진짜 미친 소리 참 많이 듣지만 그래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해주고 해결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막무가내는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어야 했다. 그게 내 정신건강에 이로운 일이었다.

단체에 후원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시민운동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 시민단체는 시민을 위해서 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를 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평소에는 온갖 욕을 하면서 필요할 때는 시민단체가 시민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물론 그 민원인이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무례한 민원인에게 끝까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써 주고, 정말 턱 끝까지 차올랐던 '술 먹었으면 곱게 잠이나 주무세요'를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나를 칭찬한다.


덧붙여... 민원인은 별로였지만 알고도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지자체에 해당 부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를 했다. 내 속이 좁아서 '빨리 해결하라'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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