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만나는 아는 동생과의 점심 자리에서 책 이야기가 나왔다. 연초라 책을 다시 읽어보려 다짐을 했다는 것이다. 책 추천 이야기가 나와서 소설책을 이야기 했더니, 이런 물음이 되돌아 왔다.
"지식을 위한 책 말고, 소설 책 읽어서 뭘 얻을수 있는데?"
동생은 경제관련 서적을 생각하고 있던차라, 소설 추천이 무슨 의미인지 물어 보았다. 지식의 확보가 보장되는 독서와 다르게, 소설은 오락용이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내 경력 때문에 더 물어본 의도가 있었던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 물음에 답하며 기록으로 남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렇게 다시 글로 정리해 보려한다.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독서로 소설을 추천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독서는 이정표를 따라 걷는게 아니라 책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부하게 표현을 하자면 책에는 지혜의 영역과 지식의 영역이 모두 분포되어 있는데, 지식만 확보해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책은 굉장히 텍스트를 단편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지식을 추가 하는 기능으로 책이 나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보기에 '독서'보단 '공부'에 가까운 행동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공부를 한다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독서를 한다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조금 이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에 비가 내려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갈 때, 호스관에 담긴 것처럼 흘러가는가? 그런것이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인가? 그렇지 않다. 물방울방울들은 상황과 지형에 따라 저마다의 모습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능선의 모습이 각기 달라지고, 계곡이 서로 다른 새로운 모양이된다. 그 다른 결과가 경외감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을 유발해주는 힘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산과 계공의 형세가 똑같다면 우린 그것을 보고 별 다른 감정이 들지 않을 것이다.
독서는 그런 것이다. 텍스트에 적힌 의미대로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들보다, 내 생각대로 텍스트와 대화하고 논쟁하는것이 더 좋다는 말이다. 물론 모든 소설이 다 훌륭하진 않다. 하지만 고전이라 불리우는 좋은 텍스트들은 독자에게 각기 다른 어떤 울림을 주었다는것이 증명된 것이라 볼 수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텍스트가 읽히고 있다는 것은 시대가 지나고 여전히 그 작동지점이 유효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것은 요약본같은 것으로 결코 얻을수 없는 좋은 텍스트를 읽음으로 얻을수 있는 것이다. 좋은 소설책은 그런 경험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다.
그러니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 아니라면 좋은 평을 오래동안 유지해오고 있는 현대 문학 작품들을 읽는것을 추천한다.
...라고 정리해 볼 수 있을것 같다. 물론 위 내용은 다시 정리하며 살을 붙이고 더 일목하게 정리를 한 것이니 그 부분은 충분히 참고해 주시길 바란다. 나는 말을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