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막바지 여러 차례의 태풍이 지나가고 있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태풍은 지구를 청소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순환하지 않는 바다의 적조현상이 심해지면 생태계를 파괴시키게 되는데 태풍으로 인해 뒤집힌 바다는 움직이면서 심해의 플랑크톤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깊은 땅속에 숨어있었던 플랑크톤이 수면 위로 떠올라 물고기의 먹이를 풍부하게 해주고 돌풍으로 인해 순환된 해수가 산소를 대량 공급시키게 되면서 바다는 자연스럽게 정화되게 된다는 것이다. 태풍으로 인한 자연의 대수술이 끝나면 바다는 이내 고요해진다. 8월이 되면 으레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는데 자연의 정화작용이라니 신기했다. 인체도 이런 자연스러운 정화작용 을 원한다고 한다. 바쁜 생활과 무분별한 식습관으로 몸 안에 독소가 쌓이면 몸에도 대청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태풍이 지구 대청소 작전이라면 사람은 어떻게 청소를 하게 될까? 그것도 온몸을 뒤흔드는 대청소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일까?
태열이라고 했던 큰아이 증상이 아토피라는 병명을 얻게 된 것은 아이가 돌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아토피(ATOPY) 의 어원은 그리이스어로 '기묘한' '이상한' '일반적이지 않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이상한 알 수 없는 피부병이 아토피라는 녀석이다. 알 수 없는 병, 알 수 없으니 당연히 치료제도 없는 경우는 만가지 방법을쓰게 된다고 한다. '할 수 있는 건 다한다'라는 전투정신으로 무장한 엄마는 좋다는 것은 다해보고 2년여의 시간이 지나자 마지막 방법을 아이에게 쓰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아토피를 포함한 모든 병은 물 컵에 비유할 수 있은데 비어있었던 컵이 독소로 차게 되면 일정기간을 버티다가 계속 무리를 하게 넘쳐버린다는 것이다. 아토피를 가진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독소가 차있어서 비워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큰아이 4 살 무렵이었다. 빈 컵으로 출발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태 어날 때부터 조금은 차 있는 상태로 태어나 다른 아이들 보다 빨리 컵이 채워져 쉽게 넘친다는 것으로 정리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토피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려운 것이어서 아이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픈 아이의 고통은 부모라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고 하는 가려움으로 아이는 밤새 울었고 몸이 가려워서 정신없이 긁었다. 손 싸게를 씌웠다가 아이가 손싸게를 벗기게 되어 모든 옷의 팔소매를 꿰매주 었다. 가려운데 긁지도 못하게 옆에서 지켜봐야하는 엄마와 태어나서 참는 것부터 배워야하는 아이와 지내는 하루는 매일 매일이 ‘전쟁터’였었다. 진물이 나와 상처 있는 피부에 들러붙어서 물을 묻혀 떼어내면 아이는 아파서 울었고 진물이 멈추면 꾸덕꾸덕 아물기 시작했고 아물었던 곳에서 하얀 각질이 끝없이 떨어져 나왔다. 자고 나면 이불위에는 피부에서 떨어진 각질이 쌓여 밖에 나가 털어내면 바닥이 각질로 하얗게 변했다. 하루는 깜박 졸다가 이불이 축축해지는 것같아서 잠에서 깼다. 아가의 오줌이 새어나온 줄 알았다. 천기저귀를 쓰고 있었던 아가는 종종 오줌이 새어나오는 날이 많았었다.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불을 켜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이의 다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이불까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아기는 나를 보고 꺄르르 웃었다. 꿰매주었던 소매틈 사이로 손가락이 나와 손톱으로 가려운 다리를 아기가 긁었던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안고 짐승처럼 울었다. 사람을 가장 무섭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알 수 없는 병, 치료제도 방법도 몰랐던 아토피에 대한 불안감은 마음한켠에 두려움과 공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왜 우리 아이가 이래야 하냐고, 내가 뭐 그렇게 잘못했냐고’ 신에 대한 원망도 나에대한 자책과 연민도
모두 사치였다. 생각할 시간에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었다.
매일 햇빛에 무거운 솜이불을 말려 방망이로 털어대야 했었고 기저귀를 삶고 빨아 햇빛에 말려야 했으며 숯으로 정화된 물에 녹차, 감잎차, 어성초 찻잎등 좋다는 약초를 우려내 목욕시켜야 했었다. 죽염수가 따가워 울기도 하고 면역력이 떨어지는 밤에 는 더 가려워해 아기를 뉘여서 재우지 못하고 품에 안고 꾸벅꾸벅 밤새 졸았다. 안아주면 그나마 잠을 잤기 때문에 나와 남편이 번갈아 안아서 재워야 했고 더우면 더 가려워해서 보일러도 틀지 못하고 2년여 앉아서 잠을 잤다. 냉온욕과 풍욕까지 해주면 하루가 다갔고 알로에가 좋다고 하면 알로에를 발라 주고 오이가 좋다고 하면 오이를 붙여 주였다. 피부가 붉게 올라오면 생 알로에의 부작용이라고 하였고 생오이는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하는 지 몰랐지만 춤 이라도 춰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좋다는 것은 다 했었다. 찻잎에 목욕을 시키고 보습을 잘해주면 덜 가려워했었다. 시중에서 파는 로션은 반응을 했고 유기농제품도 맞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어서 결국은 만들어 썼다. 올리브기름에 녹즙을 섞어 만든 유제에 볶은 소금을 넣으면 따갑다고 울면 소금의 양을 줄이고 녹즙의 양을 늘렸다. 레시피대로 만들어도 아이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여러 채소를 녹즙을 만들어봤는데 케일이 제일 진하고 유제가 잘 만들어졌다. 케일은 색상이 강해 전신맛사지가 끝난 아기는 스머프가 되었고 숯 목욕이 좋다고 해서 숯 목욕을 시키면 아이는 검은고양이 네로처럼 눈을 껌벅이며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아이는 숯 물로 목욕할때는 편안하게 잘 놀았고 편안해했다. 어성초물도 효과가 있었다. 물론 이런 방법들이 아토피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단지 아기가 편하게 목욕하고 놀면 밤에 잠을 잘자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도움이 됬다고 생각하게 된것이다. 정확한 치료법이 없는 병은 좋다는 방법을 시도해보고 아기에게 맞지 않는 방법은 지워가는 것이다. 숯도 ,어성초물도 좋았지만 목욕이 혈액순환을 도와서 잠을 잘 자게 하는 것도 모두 아토피에 좋았다. 숯을 먹이면 해독이 된다 해서 숯가루를 먹였다가 까만 숯 똥을 싼 아이를 보면서 다시는 먹이지 않았다. 아무리 좋다는 것도 아이에게 좋은지 나쁜지 판단 할 수 없을 때는 안하는 것이 답이었다. 지나고 정리하면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도 그 당시에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막막하고 두려웠다. 결국 몸속의 독소를 태우고 피를 바꿔야 한다는 단식원리를 책에서 접하고 큰아이 4살 돌이 된 둘째 아이를 데리고 지리산아래 화순으로 단식을 하러 가게 되었다.
아이들이 크고 깨끗해진 피부를 보고 어떻게 아토피가 좋아졌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면 잠시 대답을 머뭇하게 된다. 어떻 게 좋아졌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답을 했다. 단지 내가 해준 것중에 제일 잘 한 것이 단식이었고 자연치유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식을 하고 아이는 서서히 좋아졌고 단식후에도 꾸준하게 좋은 물로 목욕을 해주었고 풍욕을 꾸준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환경이나 몸 상태에 따라 증상이 다다르기 때 문이라는 말처럼 속 뒤집어지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그래도 해보고 또 해보는 무한반복의 과정, 사람마다 환경마다 다르게 반응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 ‘아토피’라는 놈이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다시 시작되는 일상이 고되고 지겹게 느껴지는날, 무거운 마음에 두려움까지 등에 업으면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인다. 봄에는 쑥을 캐서 쑥개떡을 만들거나 쑥 버무리를 해서 먹고 봄 나물을 무쳐 먹었다. 내 눈에는 실파처럼 보이는데 향이 나서 뽑아보면 작은 마늘같이 것이 달려있었다. 마을 아주머니가 ‘달래’라고 달래장을 만들어 먹으라고 그 방법을 가르쳐주시 면 달래를 먹고 원추리나물을 가르쳐주면 원추리를 뜯어왔다. 도시에서 파스타, 떡볶이와 순대를 즐겨먹고 나물은 콩나물만 먹던 나는 달래를 다듬고 캐왔던 민들레를 씻고 고구마 순을 다듬고 나면 손끝은 검게 물들고 거칠어졌다. 가을 아침에 아이들과 집안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은행 한 소쿠리. 호두 한바가지가 채워진다. 호두는 발로 밟으면 초록색 열매가 반으로 갈라져 안쪽에서 호두알이 나온다. 그리고 물컹한 은행이 담긴 소쿠리를 들고 집 앞 개울로 간다. 사각으로 만든 나무틀 안쪽 철망위에 은행을 놓고 문지르면 흐르는 물에 물컹한 은행껍질을 씻겨지고 철망 사이 구멍으로 노란 껍질을 내려보내고 나면 딱딱한 은행알만 남는다. 그런 날에는 하루 종일 손에 똥냄새가 그득했다. 고추를 따다가 항아리위에 말리거나 실로 고추를 엮어서 고추 목걸이를 만들어 옷걸이에 걸쳐 빨 래 줄에 걸어놓고 뿌듯해 했다. 가지는 십자로 잘라 가랑이사이를 빨래줄에 걸어 말리고 있으면 아이들은 빨래줄 옆 장독대위에서 밭에서 따온 것들을 가지고 소꿉놀이 를 한다.
하루는 아토피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모여서 기저귀와 아이들 속 옷을 황토로 염색을 했다. 10여명의 아이들 속옷을 염색하는 일은 어렵 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헹궈내야 하는 일이었다. 헹궈도 헹궈도 계속 나 오는 황톳물로 다음날도 그 다음날까지 헹궜던 기억이 난다. 작아지고 낡았지만 그 안에 숨은 노동력과 추억, 그리고 화학성분으로부터의 안 전함 때문에 내복이 작아져 손목위로 옷이 한 뼘 올라갈 때까지 물려 입 혔었다. 그 때 함께 염색한 기저귀를 막내가 쓰고 버리기 아까워 생리대 로 만들어 썼었다. 우리 집 마당에 모여 십여 명의 엄마들과 아이들이 모여 황토 염색을 하기도 했었고 어느 날은 아이들이 황토에 맛사지하고 목욕을 하던 날도 있었다. 벌거벗은 체 온몸에 황톳물을 바르고 놀던 아이들은 황토에 물이 들어 모두 눈 과 이만 하얗게 보 였었다. 자연 속에 서 산다는 것은 자 연에 물들어 자연 을 온몸으로 느끼 며 사는 것이었다.
한 여름, 집 주변 가득한 약초를 캐서 씻은 후 설탕에 재워 100일을 숙성시키면 산야초효소가 만들어진다. 매실효소만큼 아이들은 산야초 효소를 잘 먹었다. 봄부터 질경이와 민들레, 씀바귀, 쇠뜨기로 채우기 시작해서 비름,그리고 가을이 되면 구절초를 넣어 향을 더 했다. 커다란 항아리에 매일매일 채우는 일을 하면서 날마다 주문을 걸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