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동안 나는 몇 번을 울었다. 내 나이 오십 살이 되기 전에 정리를 하겠다는 마음이었고 이제는 흉터만 남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바쁘다고 육아일기 못 쓴 것도 아쉽고 아직도 남아있는 아이들의 성장기도 미련이 남아 기록하고 싶었다. 내 몸은 새롭게 변화했고 몸을 보기 시작했더니 마음도 보인다고 편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설레는 몸’은 너무 섣부르지 않았나 쓰고 멈추고 쓰고 멈추기를 반복했었다. 상처를 다시 들추는 것도 힘들었고 정리한다면서 신세 한탄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딱지를 떼어내 약을 다시 바르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한참 동안 멈춰 있었다.
너는 충분하다 2019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고 모두 다 내 탓 만하기에는 아픈 아이들을 감당하기에 너무 힘들었다고 아이들과 함께 나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이제 숫자 50을 찍으면 좀 가벼워지라고 슬픔이 목젖까지 차올라도 너는 충분했고 충분히 설레는 삶이었다고. (2019 -설레는 몸-중에서)
관절이 찢어져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나에게 의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고 했다. 목뼈가 서로 붙고 몸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끊어진 다리에 스트레스라는 이유를 갖다 붙여서 ' 아, 정말 아무 대나 다 스트레스를 갖다 붙이네' 하며 코웃음을 쳤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몸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그 의사의 말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진대사가 빨라도 불편함이 없어 몸을 소홀히 할 수 있지만 마음이 분주해도 변화하거나 상하는 몸을 잘 느끼지 못한다. 대사가 원활하지 못한데 몸을 돌볼 마음의 여유까지 없으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지면 "나도 나이 들어가나 봐"라며 자신의 체력이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을 빠르게 감지하며 대책을 마련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언제나 젊음을 자신하며 에너지를 활활 태워 번아웃이 되기도 한다.
길 위에서 2019
기분에 따라 몸 상태도 같이 따라 움직이게 되고 반대로 몸 상태에 따라 기분도 오르락내리락하는 등 영향을 쉽게 받게 된다. 또 사회적 동물인 우리들은 관계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가족, 직장동료, 친구 등등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무형의, 혹은, 유형의 영향을 받는다. 언어, 자연, 문화, 습관, 그리고, 음식등 우리의 환경은 상호 연결되어 있어 쌍둥이 아이를 미국과 아프리카로 따로 입양을 보냈을 때 두 아이는 식성에서부터 얼굴 모습까지 아주 다른 몸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 것만 봐도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먹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가에 따라 성격과 몸의 형태가 새롭게 형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나는' 7년 전의 내가 아니다'라고 한다. 매일매일 생겨나고 죽는 세포들은 7년을 주기로 생성 소멸을 하고 있으니 지금 먹는 음식이 얼마나 귀한가? 우리는 관계를 만들 때 흔히 같이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만큼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으로 몸을 만들고 성격을 만들고 시간과 공간이 더해져 문화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음식을 읽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019 -설레는 몸-중에서)
자연과 몸에 대한 주제로 전시를 하고 글을 썼던 2019년 11월, 전시가 끝나고 코로나 팬데믹 시대가 시작되었다. 모든 것을 소비하던 지구가 멈춰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단식으로 비우는 것만큼 깨끗한 음식이 필요했고 깨끗한 음식들이 식탁 위에 오르려면 좋은 환경이 중요하다.. 다양한 화학성분이 첨가된 가공식품, 농약과 제초제 속에서 자라는 채소와 항생제로 범벅된 공장소와 돼지로 점점 먹을 것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먹거리 속에서 좀 더 안전한 것을 찾으려는 엄마는 입에 달콤한 음식을 먹으려는 아이들에게 짱구를 굴려 가며 안전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 하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설레는 몸 포스터 2019
남편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아이들 입에 들어가 는 것만 봐도 좋지 않아?”
“어떤 음식은 입안에 있는 것을 뺏고 싶어”
“몸에 좋지 않아도 아이들이 좋아하잖아, 서로 갈등하는 것보다 사이좋게 맛있게 먹는 게 더 좋은 거야”
그의 말은 조금은 맞고 조금은 틀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서 각자 친구들을 만나고 나름의 사회생활을 할 시기가 되니 내키지는 않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단지 조금 더 철이 들고 성숙해지면 엄마의 의도와 노력을 이해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서, 사이좋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들로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먹고 즐기고 싶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는 시간이었고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수십 번의 쨉을 맞아도 대차게 한 번 맞는 어퍼컷으로 엎어지기도 하지만 지나고 보면 삶은 수많은 쨉과 어퍼컷으로 나를 단련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웬만한 어퍼컷에는 휘청거리다 다시 제자리를 찾는 기술이 생긴 것인지 맷집이 강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픈 아이들을 키우면서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링위의 경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링위에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아도 누군가 일으켜주고 시간이 엉덩이를 툭툭 털어준다.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지 않고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 때론 옆에 있는 사람들을 속 터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주변을 살피며 나만의 속도와 패턴을 찾아가고 있다.
부족한 나를 메꿔줄 어떤 무엇이 있고 나 역시 누군가의 부족함을 메꿔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의미 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냥 '불안한 내 영혼에 작은 양식'을 주는 나만의 비법 수프인 것이다. 그리 비싼 재료를 넣지 않아도 복잡한 요리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맛과 향이면 그것만으로도 최고의 식단이 될 것이다.
언젠가 한 번쯤은 2017
존재의 이유
' 뭐야? 오래전 유행가 제목도 아니고 피식 웃음이 나고 살짝 얼굴이 상기되는 단어이다. 하지만, 미약하나 그래도 의미 있는 존재라고 스스로 토닥이지 않으면 오늘은 내가 많이 외로울 것 같다. 그래서 나만의 비법 스프라도 만들어 살아갈 궁리를 하는 것이다. 보는 이를 위로해주고 행복해지는 그림과 글로 마음을 담고 정성을 다해 단식을 안내하면서 마음이 담길 몸을 만드는 일을 하며 나를 잘 지켜내고 있다.
지금, 나를 위해 따뜻한 메리골드 차를 내리는 이 순간을 사랑한다.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고 단지 덜 소비하고 덜 버리는 작은 움직임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그냥, 이것이라도’ 하는 것으로 마음의 부담을 덜어낸다. 편리함에 분별없이 먹었던 음식과 생활 습관들, 유독 아프던 출산과 육아, 소홀했던 몸에 대한 생각과 무관심했던 휴식
그리고
나를 위한 단식과 깨끗한 먹거리, 자연과 환경으로 이어지는 나의 삶의 변화를 단 몇 줄의 글로 정의하기에는 아직도 마음속 구멍이 많아 바람이 드나들지만 이렇게 남길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