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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May 27. 2019

이쁜 그녀.

[space story]  01. 화장실

<스페이스 스토리는,

너무너무너무 오래전,

한 월간잡지에 공간을 소재로 연재되었던 짧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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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내 제의에 대한 그녀의 첫마디는 이랬다.


“평생 소원이야. 한 번만 하자? 응?”


“자기 미쳤어? 어떻게 화장실에서! 난 싫어!”


“희정아아. 딱 한 번만. 다신 이런 부탁 안 할게. 응?”


“몰라! 나 갈 거야!”


그녀가 나간 빈자리에는 찬바람이 횅하니 일더니 토독토독 고드름 조각이 떨어졌다. 쫓아나갈까 하다가 괜히 뺨이라도 맞을 것 같아 그냥 앉아 있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내가 미친놈이지. 내 부탁이 어디 그녀한테 씨알이라도 먹히기나 했으려구.


그녀와 나는 캠퍼스 커플로 만나 연애만 7년째 해오고 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그 사이 군대 3년을 기다려준 열녀인데다가, 먼저 사회에 나간 그녀는 물심양면으로 내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깔끔한 외모에 늘 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친구들이며 선배들은 그녀가 내 곁에 남아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일은 본인들이 말하지 않는 이상 모르는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밤 서비스를 얼마나 잘하는지 그녀 외에 누가 알 것인가?


우리의 첫 키스는 2년 만에 이루어졌다. 그것도 내가 군대가기 전 날. 사실 내 환송회가 있던 그날, 군대에 끌려간다는 두려움보다는 어떻게든 3년이라는 예정된 이별을 빌미로 그녀의 입술을 훔쳐낼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 만큼 그녀는 손끝하나 건드리게 하지 못한 정숙한 얼음 공주였다. 밤새 키스만 5시간 했다. 그리고 푸릇푸릇한 새벽동이 터 오던 시점에서,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을 뜨며 이렇게 말했다.


“키스 하다가 혀 빠져 죽는 여자도 있지 않을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얼음이 녹으면 원래 물보다 더 질퍽해 지는 것일까? 그로부터 우리의 속궁합은 거의 퍼펙트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은 명언이었다.


7년 연애 기간 동안 크고 작은 트러블이 없을 리가 만무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깨소금이 쏟아지는 애인이었고,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원앙커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란 놈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데 있었다. 보통의 남자들이 늘 그렇듯 나도 웬만한 포르노 비디오는 다 섭렵했고, 인터넷의 야 사이트는 정복을 마친 상태고, 끊임없이 기술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헬스와 조깅으로 무기(?)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신선한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을까 하는 부단한 노력은 내가 생각해도 대견하기는 하다. 그리고 내 욕심의 정점은 다양한 ‘장소변화’였다.


희정이는 처음에 매우 몸을 사리고 거부하기도 했지만 나의 반 설득 반 강요에 못이기는 척 따라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름대로 익숙해져서 꽤 즐거워했다. 남자라면 사랑하는 여자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 나는 그녀에게 한 가지 제의를 했었다.


“카페 화장실은 어때? 스릴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리고 졸지에 나는 ‘변태’가 되고 말았다.


사실 사랑은 현실의 이성을 환상으로 만든다. 그러나 섹스는 환상의 대상을 현실로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환상과 현실의 절묘한 조화라고 생각한다.


간디의 자서전을 보면,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성적 충동과 욕구에 관해 쓴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이런 충동과 욕구를 완전히 이겨 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최초의 투쟁은 성욕에 관계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1900년 그가 31살이 되었을 때 그는 성교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1906년 항구적인 금욕생활을 맹세함으로써 이러한 절제를 확인했다. 그는 이것을 극기를 지향하는 제 1 보로 생각했다. 이에 아힘사 교리, 즉 비폭력 교리에 대한 필수적인 예비조치로 삼기도 했다.


나는 간디의 비폭력주의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그러나 그의 무 섹스주의는 절대 공감할 수가 없다. 사람이 이슬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사랑도 정신으로만 할 수 없다.


사랑은 절대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그리고 육체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중요한 대화법이다.


카페에서 나오면서 나는 다음 월급날까지 버틸 수 있는 최소의 생활비만을 남기고 나서의 여유 돈이 얼마나 있는지 계산했다. 내 기분에 넘쳐서 그녀의 생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녀가 제일 편안해 하는 흰색 린넨 시트가 깔려 있는 깔끔한 호텔을 예약해 두어야 겠다. 내년 봄에 예정되어 있는 결혼날짜가 다가오기 전에 연애 기간 동안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화사한 햇살이 정수리에 꽂히는 거리로 막 나섰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나.”


늘 전화를 걸었을 때 깔끔하게 떨어지는 그녀의 첫마디. 그녀가 전화를 걸어,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나인 것을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그녀는 알까.


“응. 어디야? 미안해. 화 많이 났지?”


“여기 아까 우리가 있던 카페 맞은편 3층에 있는 재즈 바야.”


“집에 안 갔어? 거기서 혼자 모해?”


“몇 군데 둘러 봤는데 화장실 괜찮은 데가 별로 없더라구. 이 재즈 바 화장실이 그중 젤 낮더라. 빨리 와.”


툭, 끊기는 전화기를 손에 든 채 나는 헛, 헛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건너편 3층 재즈 바의 유리창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 보였다. 횡단보도를 뛰어 가면서 나는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웃어젖혔다.


이렇게 이쁜 여우 짓을 하는 그녀인데, 내가 어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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