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진이 아직 산후조리원에 있을 무렵, 간호사분들은 다들 의진이의 태명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했다. 보통 아이가 태어난 해의 띠 이름이라거나 까꿍, 두줄 등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이름들이 많았는데, 의진이의 태명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라고 했다. 무슨 뜻일까 다들 궁리해 보았지만 짐작할 수가 없어 우리에게 직접 물어본다고 하셨다.
“그런데 산모님, ‘금향’이는 대체 무슨 뜻이에요?”
2021년 10월. 가을의 끝자락에 우리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성시경이 리메이크한 ‘제주도 푸른 밤’이라는 노래엔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며’라는 가사가 다시 등장한다. 가끔씩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 가사 좀 바꾸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걸까. 언젠가는 모든 신혼부부들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게 될 거란 걸.
제주도는 밤과 낮이 모두 다 푸르렀고, 햇살은 따스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좋은 것들을 보고, 좋은 것들을 먹으며 인생에 한 번뿐일(?) 호사를 누렸다. 여행은 어느덧 중반부를 향해가고 있었고 우리는 미뤄두고 있던 가족들에게 보낼 선물을 결정해야 했었다. 해외여행이라면 그 나라를 상징하는 기념품을 사던가 하면 됐을 텐데, 대체 제주도에선 무얼 사야 하는 걸까. 한참을 검색과 고민을 반복하던 사이 제주도 특산품을 사기로 결정했다.
그때 옥돔이라는 것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때 제주도엔 귤과 한라봉만 있는 게 아니라 그와 비슷한 과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천혜향, 진지향, 카라향, 레드향, 수로향, 설국향 등등. 한라봉을 사기 위해 들른 특산품 매장에서 사장님은 지금은 한라봉이 별로라며 다른 과일을 추천해 주셨다. 우리는 늦가을이 제철인 황금향을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특산품 매장에서 가족들에게 보낼 선물용 세트를 택배로 보내고 난 후 사장님은 황금향 몇 개를 서비스로 주셨다. 늦은 밤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와인과 함께 황금향을 맛보았다.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만족감이 여행의 피로감과 뒤섞였다. 입안을 조금씩 채웠던 달콤한 느낌이 기억난다. 그건 와인이었을까, 황금향이었을까. 별안간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그러니까, 의진이가 우리에게 온 첫 아침이었다.
여느 예비 엄마, 아빠들처럼 우리 역시 특별한 태명을 짓고 싶었다. 약간은 촌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귀엽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흔하지 않은 이름. 하지만 그렇게 쉽게 태명이 지어졌다면, 2022년의 수많은 산후조리원이 사람 반 호랑이 반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참 동안 아이가 생겼던 날, 아이가 생겼던 장소, 그즈음에 있었던 특별한 기억들을 조합해 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한 단어가 떠올랐다. 황금향. 그래. 금향이. 내 성이 황씨였다는 게 처음으로 기뻤던 순간이었다.
얼마 전 아내가 생일 선물로 황금향을 받아왔다. 세상 모든 과일을 좋아하는 의진은 황금향 역시 놓치는 법이 없다. 박스에 있는 황금향을 꺼내와 까달라고 나에게 내민다. 먼저 맛을 보았는데 아직은 신맛이 조금 남아있다. 그렇다고 의진에게 안 줄 수는 없다. 입을 크게 벌려 한입을 베어 먹지만, 이내 신맛에 뱉고 만다. 이제 그만 먹으려나 했지만, 또 달라고 한다. 다시 주었더니 이제는 뱉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를 혼자서 다 먹더니 배시시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하나를 더 달라는 뜻이다. 구 황금향, 현 황의진. 역시 이름값을 하는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