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진이 태어나고부터 집에선 언제나 동요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운드북에 달려 있는 작은 스피커나 장난감을 통해 나오는 소리라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수십 수백 번의 반복으로 이제는 제법 가사에 익숙해졌다. 좋아하는 노래도 몇몇 생겨 따라 부르기도 한다. 작년에 열린 ‘우리 집 시상식’에선 사상 처음으로 동요가 올해의 노래로 선정됐다. 그 곡은 바로 ‘꼭꼭 약속해’. 너하고 나는 친구 되어서 사이좋게 지내자.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꼭 꼭 약속해. 가사의 친구를 가족으로 개사해 부부가 싸울 일이 있으면 이 노래를 부르며 화해하기로 약속했다.
여전히 뚱뚱한 아빠곰과 날씬한 엄마곰 이야기도 마음에 들지 않아 <곰 세 마리>도 가사를 바꾸어 불렀다. 아빠곰은 귀여워, 엄마곰은 용감해, 아기곰은 소중한 친구. 의진도 이 노래를 좋아해 한동안 '아빠 부 아빠 부' 거리며 옹알옹알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녔다. 한동안 우린 의진이 말하는 아빠부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곰은 아무래도 아기가 발음하긴 힘든 단어였나 보다.
지난 주말엔 의진과 둘이서 유튜브로 ‘뽀로로와 노래해요’를 함께 감상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노래를 들으며 조금씩 따라 부르고 있던 때, ‘너의 곁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라는 멜로디와 가사가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지난 1년 반동안 나는 부성애와 책임감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 의미를 생각할 때가 많았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생후 백일즈음까진 사랑한다라는 감정을 떠올릴 새도 없이 잠이 부족했고, 언제나 피곤하고 예민한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오래 자 주기만을 아이에게 바랐었다. 사랑해서 아이를 책임지는 걸까. 이 아이를 책임지지 않을 수 없으니,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했고, 또 익숙해졌다. 사랑과 책임의 변증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품에 꼭 안겨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 아이가 내 곁에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노래 가사는 ‘아기곰에게 어떤 비밀이라도 말할 수 있어’로 이어진다. 의진이 곁에 있는 게 행복하지만 모든 비밀을 말할 순 없겠지. 어른들의 사정을 훤히 아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진 않는다. 아이는 무지해서 순수하고, 그래서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거니까.
언젠간 모든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될까. 그때가 되면 지금의 순간들이 많이 그리울 테지. 많은 선배 부모들이 말한다. 지금이 가장 귀여울 때라고. 너무나 귀엽고 소중한 이 존재가 옆에 있는 지금이 참 행복하다. 예쁜 아기곰의 노랫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언제나 너를 바라보면서 작은 소망 얘기하지
너의 곁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