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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Oct 25. 2022

포기하지 않는 것이 희망이다

구원의 손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1(2019)

√ 스포일러가 엄청납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 러브, 데스 + 로봇(Love, Death + Robot) 시즌1 중에서
구원의 손(Helping Hand)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니메이션 / 18부작 옴니버스
☞ 2019.03.15. 넷플릭스 방영 / 절대 성인용
☞ 작품 관련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알렉스는 위성 LV426 정거장에서 홀로 일한다. 그녀는 업무를 위해 우주복을 입고 정거장 밖으로 나가서 패널을 확인하려 한다.

이때 아주 작고 날카로운 나사 하나가 저 멀리서 날아와 알렉스의 우주복을 강타한다.

이로 인해 파손된 우주복. 생명유지장치까지 고장 난 상태에서 구조대 도착까지는 5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남아있는 산소는 대약 10여 분밖에는 버티지 못하는데, 그녀는 그냥 이대로 죽는 걸까?




이 작품 <구원의 손>은 산드라 블록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그래비티(2013)>의 축소판 애니메이션이다.


우주 공간에서 홀로 느끼는 고독감은 그 자체가 ‘절망’ 일지 모른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소소함마저 소중함으로 다가온다.


절대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은 그 절망 위에 ‘공포’를 하나 더 얹어 놓는다.

절망이 먼저인지 공포가 먼저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옛말에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처럼,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해도 희망의 불씨를 찾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그것이 생존과 직결된다면 더욱 절실하다.


이 작품은 <그래비티>가 그랬듯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절대적 절망과 그 사유가 되는 고독, 공포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고독과 공포란 무엇일까?


네이버 사전에서는 고독과 공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두렵고 무서움”


그냥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라 ‘매우’ 외롭고 쓸쓸한 것이다. ‘매우’는 추상적이라 그 강도가 얼마나 되는 것인지는 개인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테지만, 나는 ‘외롭다’, ‘쓸쓸하다’, ‘두렵다’, ‘무섭다’에 주목한다. 이들 모두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감정을 가졌기에 이렇게 느끼는 것이다.

감정이 없는 로봇이 홀로 우주에 둥둥 떠 있는 것을 영화로 만들었다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았을 것이다. 로봇은 기체 자체가 사람과는 다른 구조이고, 생명의 위협이라는 자체가 성립이 안 되기에 감정적으로 동감할 게 없다. 그냥 물체 하나가 온통 어둠뿐인 공간에 홀로 둥둥 떠다니는 의미 없는 것이 된다.


감정은 사람에게 동기를 유발하는 최고의 강점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핵심적인 약점이 되기도 하다.

다른 감정은 모두 제외하고 외로움과 쓸쓸함만 따져보자면, 일단 부정적인 감정임을 생각해야 한다.

감정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직관적이라 느끼는 순간 전체를 지배한다. 따라서 부정적인 감정은 생명의 반대편을 향해서 질주한다. 그것이 바로 ‘절망’이다.


작품에서 알렉스도 상황 파악이 됐을 때, 유일한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본부와의 연락을 끊어버리는 행동을 보이며 절망적인 심리를 표현한다.

부정적 감정은 자포자기를 쉽게 끌어내고 ‘찰나’에 정신 상태를 해체한다. 원래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무서운 법이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게 만든다.


이런 부정적인 부분만 생각하면 사람에게 감정은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가끔 영화에서 ‘인간병기’로 표현되는 사람은 감정이 제거된 사람이다. <배트맨>의 빌런 ‘조커’는 감정에 큰 상처를 입어 부정적 감정에 굴복함으로 변형된 형태를 보여준다.


감정이 없는 사람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으므로 인간으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 감정이 없다면 로봇이나 무생물과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그만큼 감정은 사람 자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적 감정만 제거된 인간은 어떨까? 결과는 마찬가지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존재하듯이 부정적 감정이 없다면 긍정적 감정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진 감정의 참된 가치는 부정적 감정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 이를 극복이라 한다.

극복의 원동력은 희망이고 기대다. 그런 바람을 실천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인간은 더욱 풍요로운 존재가 된다.


이렇듯 인간 개인과 전체가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보면 지식보다도 감정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감정이 결여된 상태로 지식만 채운 사람은 사회에서 이중적 가면을 쓴 채, 자신이 획득한 지식을 이용해 권력을 탐하고, 다시 권력을 이용해 상대방을 탄압하고 착취하기도 한다.


‘올바름’이란 타인에 대한 완성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먼저 갖춰야 타인에게도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머리에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에 솔직한 태도로 다가서는 수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타인의 외로움을 올곧이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이 가진 감정의 작동방식은 대부분 그렇다. 내가 느껴봐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감정은 그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고 내면의 다스림이 중요하다.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의 경험은 긍정적 감정을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슬픔, 노여움, 외로움, 쓸쓸함 등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지만 경험해보지 않으면 극복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환희와 반대되는 감정들의 소중함을 절대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감정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자신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인 것이다. 또한 부정적 감정을 극복해냄으로써, 또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을 갖게 됨으로써 더욱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들어 낸다.


또한 우리 모두가 그렇게 애타게 찾아 헤매는 ‘올바름’을 찾아내는 밑바탕이며 ‘솔직하고 당당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결국 혼자다. 고독함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수순인 것이다.

천명의 사람이 있다면 천 개의 생각과 천 개의 감정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고독함을 바탕으로 타인의 고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언젠가는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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