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유서 #4/5

고된 생을 살아낸 한 청춘의 마지막 편지

by 마지막 네오

친구야… 내 생애 유일한 친구야… 너는 내가 흘린 눈물들을 알 수 있니? 내 아버지의 저주로 인해서 생겨난 눈 밑에 푹 파여 들어간 흉터부터 해서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입을 모아 얘기하는 친척들과 항상 돈 앞에서 벌벌 떨던 이모들…

나의 외로움이나 소망 따위 얘기 나눌 친구 하나 내게는 없었고, 정말 어렵고 힘든 일 하나 상의할 어른도, 동생도… 사실 그 누구도 없었다.

이런 외로움을 너는 아니?


친구야… 내 인생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야…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비싼 옷 같은 건 입어보지도 못했다. 친구들이 축구화를 신고 공을 찰 때, 3천 원짜리 운동화를 신고 공을 찼어. 밤에 집에 돌아와 아무도 모르게 발가락이 밖으로 다 튀어나온 양말을 벗을 때면 양말과 생채기가 엉겨 붙어 얼마나 아팠는지.

나는 나만의 책가방도 가져본 일이 없다. 학업을 마지막으로 포기할 때까지 그 원수 같은 사촌 놈들의 헌 책가방을 ‘고맙습니다’하며 가지고 다녀야 했다.

조금 자라니 그런 고통은 마음에 생겨난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부모와 공원이든 어디든 놀러 다니는 모습을 부러워해야 했고, 내 불량한 모습에 지영이 같은 여자애들은 괴물 보듯 겁먹고 달아나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그렇게 누구도 내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이는 없었다.

혼자라는 것이, 정말 세상에 혼자 버려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힘든 일인지 반이라도, 아니 더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겠니?


그래, 그래서 나는 네 대학 입학식 날 이후로 두 번 다시 네 눈에 안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세상을 찾기 위해서 나름대로 살아왔다.

내가 사는 세상은 낮과 밤이 아주 다르다. 낮이면 삐걱거리는 고물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모여 앉아 카드를 하다가 밤만 되면 거리로 나간다. 어차피 사람답게 살기는 글러버린 내가 아니냐! 칼과 쇠몽둥이가 날아다니는 지옥에서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싸웠다. 적을 가슴에서부터 배꼽까지 그어 내려 얼굴에 내장이 튀어나오는 것도 봐야 했고, 때로는 내가 그 꼴을 당할뻔하다가 시궁창 물속에 버려진 적도 있었다.

경찰과 100미터 시합하는 것?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지.


여자? 그래… 지영이 같은 애들… 다 소용없더라. 제법 내 이름에 겁을 먹는 놈들이 늘어나면서 썩은 돈이 주머니로 들어오던 것처럼, 계집도 싫어서 쫓아버릴 만큼 많이 모이더라. 사랑? 허! 그런 건 세상에 없는 게 틀림없어. 그 많은 계집애들 중에 나를 마음으로 사랑했던 년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내가 던져주는 돈! 오직 그것만이 삶에 신앙인 것들이지.


언젠가 네가 내게 신앙을 가져보라고 성경책을 주었던 때 생각나냐? 아마… 네가 대학입시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고 나는 이모네 집을 완전히 벗어났을 때… 뭐, 그래 봐야 사실 도망쳐 나온 것이지만. 뭐… 아무튼 그때 생각이 난다.

네가 그랬었지.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 자신의 평화를 구하라’고… ‘예수님을 믿으면 나와 내 가족이 구원받을 거’라고… 하지만 내게는 처음부터 구원할 가족도 없었지만, 예수도 없었고 베아트리체 같은 천사 따위도 없었다. 구원의 손길은 매번 나를 이용해보려는 수작에 불과했고, 그로 인해서 믿음 따위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참… 슬픈 일이지… 진정으로 혼자가 되면 신앙도 필요없다.


친구, 너에게 마지막 편지라고… 겨우 이런 지저분한 얘기를 남기게 된 것이 그렇고, 네 마음을 또 쓰리게 만든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나는 결국 너에게 끝까지 이렇게 너저분하고 못난 놈이구나.


너는 이제 막 결혼해서 행복하고 단란한 신혼의 재미를 보고 있겠지만, 나는 그저께도 약물이 과다해서 지옥을 헤매다가 어제저녁 7시쯤에야 눈을 떴다. 주사기가 주위에 수북하게 쌓인 서울 외곽 시궁창 물 쏟아져 내리는 다리 근처였지.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얼굴도 처음 보는 남자 둘이 내 옆에서 시궁창 물에 대가리를 처박고 죽어있었는데… 그놈들 몸에서 벌써 구더기가 벅벅 기어 나오고 있더라. 까만 물 위에 둥둥 떠가는 주사기들 사이에 빨간색 하이힐과 여자 속옷들…

겨우 몸을 일으키고 밖으로 기어 나왔는데 숲으로 이어지는 하수구에서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번뜩 생각났지. 어젯밤에 보스와 그 아내를 죽였다는 것을!

그래… 하하하… 나는 오래전부터 살인자였다. 아주 오래전에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더냐! 그런 나 같은 놈이 그 버러지 같은 자식을 죽이게 된 이유가 뭔지 아나?

좋아, 어차피 마지막으로 남기는 편지니 다 얘기해 주마.


(#5로 이어집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