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리움을 승화하는 법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by 마지막 네오

11. 그리움을 승화하는 법


<잃어버린 자전거에 얽힌 지난 이야기>가 밝고 낭만적인 곡이었다면 이어지는 <안녕, 또 다른 안녕>은 어둡고 쓸쓸한 느낌이 강한 곡이다. 이 곡은 정원영이 작사·작곡한 곡이다.


이별이 오래되어 이제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고 눈물조차 말라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어느 날 불쑥 솟아나는 그리움은 이겨내기 힘든 그리움으로 북받쳐 오를 때가 있다.

비 오는 날, 기분이 쓸쓸하고 우울할 때 들으면 좋을 것 같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안녕, 또 다른 안녕>


사견을 좀 곁들이자면, 슬픔이나 그리움, 쓸쓸한 감정은 이겨내려고 애쓰는 것이 오히려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는 마음껏 그 감정에 빠져 감정에 따르면 된다. 슬프면 슬퍼하고 기쁘면 기뻐하고, 그리우면 그리워하면 되고 쓸쓸할 때는 쓸쓸해하면 된다.


목멜 듯한 무언가가 휩쓸고 지나면 차분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다른 무엇이 마음 한가운데 자리한다. 이것은 경험해 본 것이라 적는다. 물론 모두에게 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 나름 ‘그리움을 승화하는 법’이라 하겠다.


예전에 누군가 현명한 사람이 말한 것 같다. 감정에 맞서는 것은 인간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맞서낼 수 없는 것이라고.

감정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 마음속에서 강렬하게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라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흐르게 두어야 해소되고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 그 흐름에 흙탕물이 남지 않게 돕는 가장 좋은 도구가 음악이다.


이어지는 연주곡 <기억을 위한 사진들> 같은 곡은 그런 도구로 딱이다. <안녕, 또 다른 안녕>에 이어서 <기억을 위한 사진들>을 연속해서 들으면, 첫 소절에서 무겁고 잔잔하게 흐르는 피아노 선율을 타고 자연스럽게 들어설 수 있다. 그러다가 조금 경쾌한 기타 연주로 이어진다. 이 정도 템포가 계속 이어지면서 기타, 피아노, 색소폰 연주로 돌아가며 조심스럽게 마음을 위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기억을 위한 사진들>


잠깐 새어나가 다른 얘기를 하자면, 언제부턴가 ‘치유’나 ‘위로’와 같은 좋은 우리말을 두고 ‘힐링’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우리 사회에서 쓰이는 ‘힐링(healing)’이라는 영어 단어에는 원래 뜻인 ‘치유’의 의미도 있지만, 여유와 쾌적한 생활 여건을 뜻하는 의미도 함께 들어있다. 즉, 단어 의미에 함의로 사회 계층구조에서의 우월과 열등이 담겨 있기도 한 말이다.


충분히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말도 혀를 굴려 말하면 그게 더 세련되고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우리말이 타락하고 더럽혀지고 있다.

특히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일수록 쓸데없는 혀굴림을 감행하는 행태를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같은 강대국이나 일본이나 서구 열강처럼 침략과 전쟁을 일삼은 국가의 말을 우리의 생활 언어로 사용하는 것이 식민 지배를 당했던 나라이자 강대국의 이해타산에 따라 반으로 갈려있는 나라의 지도층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인지 묻고 싶다. 분명하게 말하건대 협력과 종속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처럼 여전히 식민 지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신 나간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3.1절에 일장기를 게양하기에 이르렀다.

(출처 : MBC뉴스, 3·1절에 '일장기' 내건 아파트‥"좀 내려달라" 찾아갔더니, 2023-03-01 17:11, 곽동건 기자) (2023년 3월 1일 세종시에서 발생).


외부에서 반성은커녕 또다시 제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본토의 그들이야 원래 그런 족속이니 그렇다 치지만, 내부에서 친일파 윤덕영이나 이완용을 승계하여 파렴치한 짓을 일삼는 이들은 ‘나쁘다’는 말로는 쉽게 끝내지 못하겠다. 욕이란 아는 욕은 다 처발라줘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작태는 ‘친일’, ‘반일’의 개념을 떠나서 봐도 뚜렷하게 잘못한 가해자가 큰소리치고, 피해자가 오히려 벌벌 기며 굴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정말이지 개탄스럽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것만 같다.


뭐, 욕을 하자면 하루 종일도 이어갈 수 있지만 ‘소 귀에 경 읽기’ 하여 소를 이해시키는 것이 더 빠를 것이므로 그만하고, 이런 범국가적 차원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더불어 한심한 세태가 빚어놓은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을 위로해 주고 치유해 줄 수 있는 역할이 정말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추억에 젖거나 그리움에 빠지는 것은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묘한 경험이다. 그것은 슬픔이라 할 수 없지만 슬픈 느낌도 들고, 쓱 그리는 미소를 보건대 기쁨인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다. 혼자만이 알고 있는 기억들과 그에 대한 감정적인 동요는 글로 써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동요는 심한 경우 길을 걸어가다가 털썩 주저앉아야만 할 때도 있고, 밥을 먹다가 갑자기 주르르 흘러나오는 눈물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정말 묘한 경험이다.


그럴 때! 혹시라도 그런 때라면 가만히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일상의 한 장면이 햇살 가득한 어느 날의 풍경처럼 지날 수 있도록, 그리움이 향기 나는 화단이 될 수 있도록, 외로움이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쓸쓸함이 불어나는 시원한 바람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소외된 침묵으로 자리하는 어떤 이의 모습이 강직한 대나무처럼 자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좋은 음악은 항상 위로가 된다.


(#12로 이어집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