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集 사랑하는 이에게…
나 방금 전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웃는 그녀는
아쉬움을 남긴 채 잠시 떠나갔지마는
소중한 무엇으로 남아서 가슴을 채웁니다.
사랑하는 일은 이리도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왜 진작 손을 내밀지 못했었나 후회가 됩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때에는
참으로 맑은 마음이 되어 있을 겁니다.
나의 짓궂은 농담에 놀라는 그녀는
정말 사랑스럽지요.
그녀의 눈물을 생각합니다.
내 생각하며 떨구었을
그 많은 눈물을 찾아주고 싶어요.
강하다 하지만
내게는 여려 보이는 나의 그녀는
순식간에 내 영혼을 빼앗아 가 버렸지만,
이렇게 더 커다란 기쁨에 맘이 설렙니다.
이제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그녀도 마음을 열어주고
내 미소를 보며 기뻐합니다.
이런 우리가 참 좋아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 좋고요.
서로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은,
서로에 대해서 몰라야
이해해 줄 수 있다는 말은,
처음부터 이유가 없어서
대답이 단순하다는 말은,
아무것도 모르는 게 모든 것을 안다는 말은,
그리고 사랑한다는 나의 말은
거짓말이 될 수 없는 말들입니다.
내가 말했죠
나도 물론 거짓말한다고...
그건 거짓말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만...
나의 그녀에게는 차마 할 수 없어요.
그녀는 나의 한마디에
눈물을 글썽이는 순진한 사람이니까
나의 그녀에게는 차마 할 수 없어요.
그녀는 나더러 아기 같답니다.
내게는 그녀가 아기 같아요.
내게 마구 응석 부리면 좋겠어요.
바람 부는 날이 좋아요
비가 오는 날이 좋아요
눈이 오는 날도 좋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는
깨끗한 아이들이 살지요
그 마음을
그녀에게 고스란히 주고 싶어요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은
그런 마음뿐입니다.
가진 거라곤 그런 마음뿐이기 때문입니다.
훌륭하지도 않고
자랑할 만한 것도 없지만
내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에요
그녀에게 가서도 내게 작용했던 것처럼
산소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봅니다.
참으로 남지 않을 때까지 주고 싶어요
나는 압니다.
많이 주면 줄수록
내 안에는 더 많이 남는 것을...
그러나 다 주고 말 거예요!
그녀는 항상 나를 많이 걱정합니다.
나도 항상 그녀를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우리가 둘 다 아이 같기 때문인가 봐요
강가에서 재미나게 소꿉놀이하고 있는
그런 작은 아이들 말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아주 많은 얘기를 해 줄 겁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쁜 생각들을요
하얀 눈 내리는 소리 없는 새벽을...
까만 산 넘는 아기별 얘기도요
엄마를 찾아가는 강물 속
꼬마요정을 얘기해 줄 것이고
가을 저녁 들판에 내려앉는
노을 얘기도 해 줄 거예요
나는 그녀에게 아주 많은 얘기를 해서
그녀의 손뼉 치며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요.
현실은 차갑고 힘들지마는
다른 눈으로 돌아보면 행복한 세상
그것을 알게 해 줄 것이고
내 힘들어하는 모습도
솔직하게 다 보여줄 겁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내면의 방황도 모두 얘기해 줄 것이고
나의 슬픔이란 어떤 것인지
다 얘기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아주 많은 얘기를 들어줄 거예요
그녀가 알고 있는 소박한 생각들을요
아직은 하나도 모르는 설렘부터
함께 있으면 두근거리는 소리도 듣고
강물에 발 담그고 하늘을 보는 눈빛도
말할 때 느껴지는 아주 작은 억양까지도
그녀의 슬픔은 어떤 것인지
모두 들어주고 싶어요
그리곤 달래줄 겁니다.
‘아파하지 말아요’ 하며...
‘세상은 아름다워요’ 하며...
때로는
‘사랑해요’ 하며...
그녀의 슬픔을 모두 지우고 싶어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비밀이 있어요
아무에게도 말 못 하는
너무나 말하고 싶은,
그러나 사랑은 말하지 않는 말
그러기에 내 다문 입술을 탓하지 말아요
그녀는 내 다문 입술을 보게 되어도
앞으로는 침묵이라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것은 너무나 많은 단어의 나열이며
진실을 뿜어대는
별들의 대화 같은 거...
이제 그녀 안으로 막 들어선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마는 느끼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탯줄을 타고
지상에 생명으로 이름 지어진 순간처럼
단지 느낀다고 썼지마는
그것은 어떤 믿음보다도 신뢰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듣고 있나요?
이제는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당신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다 해도
그 모레 틈 속에 당신이 함께 있다 해도
이제 내 시력은 당신을 금방 분별합니다.
당신께 이런 말 했어요
당신은 유일한 존재라고...
‘유치환’님 말씀대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
당신께 사랑 받음도 행복하지만
당신이 날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며 살 테요
당신도 내게 지기 싫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며 살아요
쉽게 핀 꽃은 쉽게 저문다죠
힘들게 자리한 고목은 폭우에도 서 있지요
바위가 불변한다 한들
수천 방울 물방울에 변화한답니다.
우리 가는 길에는
더욱 심한 어둠이 짙은 곳이 많이 있어요
내 손을 잡고 놓지 말아요.
시간을 넘어서 햇살을 스치며 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듣고 있나요?
나 이렇게 자유롭고 싶지만
행복한 속박이란 맞는 말입니다.
당신 안에 나를 가두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으렵니다.
그 안에서 당신 숨결을 들으며
잠이 들고 싶어요.
이제 이 길어진 문장을 닫으며 말합니다.
시간을 다 접어서 만든 백지인들
당신께 전하고 싶은 내 마음을 적기에는
우주 속 먼지만큼도 안 된다는 것을...
무려 35년 전에 썼던 글들을 찾았다. 바닷속에서 보물을 찾아낸 것만 같다.
이 시는 1987년 11월 4일부터 노트에 적어놓은 글 중에 한 편이다.
날짜 표기가 있는 것은 옮겨 적으나 날짜 표기가 없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린 소년 시절의 습작이라 부족하고 엉망이지만 가능한 있는 그대로 올린다.
그 시절 순수했던 '소년의 나'를 그리워하며, 온통 사랑으로 분칠 해놓은 부끄러움을 꺼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