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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pr 04. 2022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왜 아르헨티나를 공격했을까?


제1차 세계 대전이 대부분 유럽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다른 대륙의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특히 중남미 국가들은 전쟁을 오히려 수출 기회로 삼았고, 이 시기 동안 어느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남미 국가들이 전쟁 위협에서 완전히 안전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1917년 4월 4일 배 한척이 독일 잠수함 유보트의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게 되는데, 공격을 당한 선박은 네덜란드로 가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해안 근처를 지나던 아르헨티나의 몬테 프로테히도 (Monte Protegido)였습니다.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는 중립을 지키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이폴리토 이리고옌은 연합군을 돕자는 미국의 압박에도 휘둘리지 않았고, '같이 미국을 공격하자'라는 독일과도 손잡지 않았습니다. 두 세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아르헨티나의 실리를 챙겼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공격으로 그의 중립 외교 정책은 큰 도전에 직면했고, 아르헨티나 내부에선 연합군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거세졌습니다. 


토로호 침몰 이후 중립 관계를 끊길 원하는 시위대 (사진 자료: infobae)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선박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며 독일 타도를 외쳤습니다. 그들은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고, 아르헨티나 내 독일 이민자 마을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난 반독일 시위는 전국 각지로 퍼졌으며, 언론에서도 연일 공격적인 어투로 이리고옌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이리고옌 대통령은 ‘비겁한 평화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끝까지 아르헨티나의 중립 위치를 고수 했습니다. 심지어 1917년 6월 6일과 6월 22일에 오리아나 (Oriana), 토로 (Toro) 선박이 연이어 독일 군에 의해 침몰했음에도 중립을 지켰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참전 대신 자국의 평화를 유지하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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