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10월, 매달 급격한 상승선을 그리던 업무량과 피로도는 11월에 들어서면서 수직에 가까운 하강선을 그리고 있다. 방학이 시작되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그 끝을 모르게 바닥을 칠 것이다. 서로 다른 날짜에 들쑥날쑥 들어오던 사업비를 모두 더해 8개월로 나누니 그간 번 돈은 직장 다닐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은 참 많이 했는데 손에 쥔 것은 거의 없다. 올해가 한 달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조찬용 선생님께서 브런치에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고, 심경에 변화가 생겼느냐고 여러 차례 물어 오셨다.
보고 싶구나.
계절별로 꽃, 숲, 호수, 일몰 등 아름다운 사진과 메시지를 여러 번 보내오셨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저런 일들로 뵙지를 못했다.
잊지 않고 일을 맡겨 주는 여러 선배님들과 예전 직장 동료에게 고마웠다. 마감을 넘겨 그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자신에 대한 실수를 못 참는 사람이었다. 그 못된 성미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직장을 나왔으나 놀지 않았고, 놀지 않았으나 공부하지 않았다. 이토록 뒤끝이 개운치 않은 건 바로 그 때문인지 모른다.
한 친구가 그랬다. 너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고. 이 말을 마흔다섯에도 들을 줄은 몰랐다. 나는 말했다. 삶은 내가 정한 목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 않느냐고. 20년 가까이 일했으면 된 거 아니냐고. 그렇다고 노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그러나 이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꼭 뭐가 되어야 하느냐고. 그 길만 맞는 건 아니지 않냐고.
여러 프로젝트를 하며 비로소 눈이 뜨였다. 그동안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매일 매순간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겨우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어떻게 선하게 베풀 수 있을까. 그를 위해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퇴직 후 8개월 동안 얻은 소득치곤 꽤 값진 질문과 방향 설정이 아닐까.
얼마 남지 않은 2023년, 다시 차갑게 생각하고 시간을 재편하는 일. 일단 그것부터 시작! 걱정은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