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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담글 줄 모르는 며느리

by 어슴푸레

눈이 빠져라 모니터 속 활자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네 어머니.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집에 있냐?"

"네."

"딴게 아니고 이따 할아버지가 김치 가져다주실 거야. 하룻밤 놔 놨다가 내일 김치냉장고에 넣거라."

"아 어머니. 벌써 김장하셨어요? 저 부르시지 그랬어요. 힘드셨겠어요."

"김장이랄 것도 없다. 부천 작은아버지가 절인 배추를 몇 포기 보내지 않았냐 안. 하루이틀 두고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담가 버렸지. 진짜 김장은 다음에 하고 일단 그거부터 먹으라고 보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부끄럽게도 난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 알배기 배추 사다가 겉절이를 담가 본 게 열 손가락 안에 채 안 든다. 몇 포기씩 배추를 사서 알맞게 절여 물기를 짜고, 마늘을 빻고, 무채와 쪽파를 썰고, 찹쌀 풀을 쑤어 식히고, 멸치액젓과 새우젓을 태양초 햇고춧가루와 버부려 김칫소를 만들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수고도 수고지만 푹 익어 물러진 김치에 흰 골마지가 생기지 않게 하는 '최적의' 양념 농도와 '최적의' 절임 정도란 그야말로 '신비 탐험 미지의 세계'였다. 다음 해까지 자그마치 1년 식탁을 책임지는 김장 김치는 언감생심이었다.


친정 엄마가 매해 김장을 할 때에도 나는 그저 절인 배추를 짜고, 김칫소의 간을 보고, 절인 배추에 김칫소를 넣는 '김장 체험'에 가까운 일만 했었다. 고등학교 땐 대입 입시를 앞둔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대학교 땐 기말고사와 조별 과제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직장을 다닐 땐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로 단 한 번도 엄마 옆에서 배추를 다듬어 씻고, 소금을 쳐서 절이고, 무채와 갓을 썰고, 풀을 쑤고, 김칫소를 버무리는 일련의 일을, 아니 그중 단 한 과정도 오롯이 한 적이 없다. 그 모든 일을 당신 혼자 몇십 년 동안 하는 사이 엄마의 허리는 한 해만큼 굽었을 거였다.


시집을 와서도 마찬가지다. 애들이 어릴 땐 어리다는 이유로, 애들이 클 땐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회사를 나와선 마감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염치없이 넙죽넙죽 얻어먹기만 했다. 어머니는 한 번도 내게 이번 주말에 김장할 것이니 건너오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아버님과 혹은 이모님들과 주중에 미리 다 담가 놓고, 주말에 애들과 내가 '김장 체험'을 할 만큼의 양념과 절인 배추를 따로 남겨 둘 뿐이었다. 내년엔 꼭 김장하는 거 배우겠다는 말로 때운 게 벌써 14년째다. 수십 년 주부 구단 앞에서 난 입만 살았다.


어머니의 '김장이랄 것도 없는' 김치가 맛있게 익었다. 올해 '본격 김장'은 꼭 어머니와 함께하고 싶다. 김칫속을 넣은 배추쌈을 크게 싸서 어머니 입속에 넣어 드리고 싶다. "되었다. 간 맞다." 어머니께 오케이를 받고 싶다.


올 김장에는 나이롱 며느리 딱지 좀 떼 보자(불끈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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