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금 여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슴푸레 Jul 30. 2024

어쩌다 모둠튀김 플래터

  -엄마, 오늘 점심은 감자튀김이죠?

  -미안. 엄마 마감이 얼마 안 남아서 지금 너무 바빠. 저녁에 해 줄게.

  -주말에 해 준다. 내일 해 준다. 점심에 해 준다. 이제는 저녁에 해 준다예요? 대체 언제 해 줄 건데요?

  -정말 이따 해 줄게. 미안. 하려고 어제 감자도 사다 놨어.

  -진짜죠? 자 약속. 도장. 사인. 복사.


    나보다 15cm는 더 큰 아들애가 아이 같은 표정으로 게 다짐을 받는다. 약속을 안 지킬 수가 없다. 오후 여섯시 반. 부랴부랴 감자를 필러로 벗겨 너무 얇지 않게 썰어 찬물에 담가 전분기를 다. 큰 감자 세 개로는 두 애가 먹기엔 어림도 없어 고구마 두 개와 미니 단호박도 씻었다. 고구마는 감자처럼 스틱 모양으로, 단호박은 반을 잘라 씨를 뺀 다음 초승달 모양으로 조심조심 썰었다. 감자를 체에 받쳐 물기를 빼고 짭짤하라고 소금을 톡톡 쳤다. 볼을 꺼내 튀김가루를 넣고 물을 반 컵 붓고 계란 한 알을 깨서 품기로 저은 다음 소금과 파슬리 가루를 넣고 섞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기름이 끓는 동안 고구마와 단호박 썬 것을 튀김 반죽에 넣었다. 기름에 굵은소금을 넣자 포르르 하고 튀어 올랐다. 반죽 안 묻힌 것부터 깨끗하게 튀겨 내야지. 길쭉하고 도톰한 감자 스틱을 팬 속으로 스르륵 넣었다.


   -얘들아. 다 됐어. 와서 먹어.

   -이것만 하고요.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어. 어서 와.

  

  그렇게 해 달래 놓고 눈은 핸드폰에만 가 있다. 이휴. 안 보는 게 낫지 원. 건지기로 튀김 부스러기를 걷어 내고 반죽 묻힌 고구마와 단호박을 기름에 튀겼다. 끓는 기름 속에 반죽이 닿으면서 불규칙한 실 모양의 반죽이 기름 위에 짝짝 퍼져 그 즉시 굳었다. 긴 나무젓가락으로 반죽 부스러기를 한 방향으로 돌려 깨끗이 걷다.


  -엄마, 너무 맛있어요.

  -역시 감자튀김은 엄마가 해 주는 게 최고야.

  -자. 이것도 먹어 봐. 지금 막 건져서 뜨거우니 한 김 식으면 먹어.

  -와 맛있겠다.


  가스렌지를 정리하려다 식탁을 보니 순삭. 모자르겠다 싶어 서둘러 감자 한 알과 가지 한 개를 가져와 씻었다. 둘 다 한입 크기로 썰어 남은 반죽을 묻혔다. 생각지 않게 일이 너무 커졌다. 감자튀김이 모둠튀김 플래터가 되었다.


  아이들이 자리를 뜨고 남은 튀김을 모아 접시에 담았다. 튀김만 먹으면 느끼할 것 같아 맥주 한 캔을 땄다. 간장 대신 칠리소스를 종지에 짜서 접시 중앙에 두었다. 찰칵.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어쩌다 모둠튀김 플래터.

  어쩌다 혼맥.


  감자튀김에서 비롯된 '어쩌다' 선물 세트였다.


#시작은#감자튀김#결말은모둠튀김플래터#마감몇시간안남겨놓고#이럴일#손큰사람아닌데점점일이커진다#괜찮아#그덕에또한편썼잖아#아웅#정신승리#글쓰기#글감#일상#어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