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은 아신다
이곳에서는 미용실 가서 머리 자르려면, 우선 팁 포함해서 돈이 많이 들고, 다음으로 원하는 (한국적인) 스타일이 잘 안 나온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한국 미용실을 많이 찾는다. 나도 동료에게 소개받은 한국 미용실에 갔다. 할머니 원장님이 팁 없이 20불이면 잘 깎아주신다고 했다.
미미 미용실은 오렌지 카운티의 터스틴(Tustin)이라는 타운의 아담한 쇼핑몰 안에 있었다. 이름부터 정겨웠다. 미미 미용실, 어릴 적에 많이 보던 미용실 이름 중 하나다. 미용실은 제법 컸다. 널찍한 미용실 내부를 보며 일하는 분들과 손님들로 북적거렸을 때가 상상이 되었다. 지금은 혼자 하시고, 그것도 힘드셔서 예약 손님만 받고 오후 서너 시면 문을 닫지만, 예전에는 일하는 분들도 몇 분 두시고 하셨다고 한다. 오랜 단골이 많은지 우리가 머리를 자르는 동안에도 계속 예약전화가 왔다.
미국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머리가 길게 자란 나와 욱이는 이발비를 아끼려고 버티다가 드디어 함께 머리를 잘랐다. 원장님은 머리를 자르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셨다.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원장님은 30여 년간 미용실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원래부터 미용기술을 가지고 계셨던 것은 아니고, 미국 이민 와서 생계를 위해 새로 미용을 배워서 시작하셨다. 낯선 땅에 와서 40대의 나이에 새로 미용 기술을 배워서 정착하시는 과정은 험난했을 것이다. 미용으로 자식들을 다 키워내신 원장님은 지금 편안해 보였다.
머리는 자라고 또 자라서 다시 미용실에 갈 때가 되었다. 이번엔 20불을 아끼려고 욱이만 이발을 했다. (참고로 나는 한국에서는 8천원 주고 남성전문 컷트클럽에서 자르므로 딱 3배 가격이다. 이것도 이곳의 다른 미용실에 비하면 저렴한 것이다)
"저는 더 기르다가 다음 달에 자르려고요."
머리가 긴데도 자르지 않는 게 괜스레 미안해진 나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소파에 앉아 욱이가 머리를 자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욱이와 원장님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화제는 욱이의 탈모였다. 욱이는 머리가 많이 빠진다고 걱정이 많다. 욱이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대를 걸러서 유전된다고 흔히 알고 있는 대머리(요즘은 이 말을 쓰길 꺼려한다)가 될까 봐서이다. 욱이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두 분 다 대머리시다. 가끔 욱이가 탈모에 대한 걱정을 하면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오히려 농담으로 받아주었다.
"하하하, 그럼 머리 더 빠지기 전에 빨리 장가를 가야겠네."
"대머리는 한 대를 걸러서 유전된대. 욱이는 두 분 할아버지가 다 대머리시니 어떡하냐."
욱이는 이런 내가 자기의 진지한 고민을 가볍게 생각한다고 하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실제로 탈모가 있는 분들은 매우 신경을 쓴다. 탈모가 없는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 머리 좀 빠질 수도 있지,라고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당사자들의 고민은 심각한 경우가 많다. 단적인 예로 우리 아버지를 들 수 있다. 아버지는 40대부터 앞머리가 빠지기 시작하셔서 옆머리를 길게 기른 후 앞이마에 널어서 가리는 헤어스타일을 유지하셨다. 5,60대를 거치시며 더 탈모가 진행되어 가발을 쓰시기도 했고 탈모를 방지하는데 좋다는 여러 요법을 써보시다가 70대 이후로는 그냥 모자를 쓰고 다니신다. 어느 날에는 샤워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을 머리에 오랫동안 맞으면 두피가 자극이 되어서 머리가 난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으시고는 며칠 실행에 옮기신 후에 나를 보며 "여기 봐라 흰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나는 것 같지 않냐" 하시기도 했다. 아버지를 보면서, 연세 드신 분이 대머리이신 게 별로 흉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시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사들이 느끼는 것은 달랐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탈모였다.
욱이는 자신이 M자형 탈모가 진행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장님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고 하시며 나를 한번 보시더니 아빠도 머리숱이 많고 본인도 머리숱이 아직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하셨다. 욱이는 두 분 할아버지가 다 머리숱이 없다고 했다. 원장님은 아직 M자형 탈모의 증상이 보이지는 않고 전체적으로 머리숱이 많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욱이는 원장님의 말씀에 힘을 얻은 것 같았다. 원장님은 얘기를 이어갔다. 손님 중에 탈모가 심한 분이 있었는데, 요즘은 머리카락 옮겨 심는 기술이 좋아져서 시술을 하고 나니 몰라보게 달라졌고 십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머리숱이 많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혹시 만에 하나 나이가 들어 앞머리가 빠지더라도 욱이는 나머지 부분에 머리숱이 많으니 머리카락을 옮겨 심으면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욱이는 자신의 걱정거리를 조곤조곤 덜어주시는 원장님의 말씀이 고마웠는지 머리를 다 자르고 일어나면서 평소 안 하던 뜻밖의 행동을 했다.
"제 이름은 욱이예요. 기억해주세요."
그 순간 나는 뭔가를 강하게 느꼈다. 아, 내가 욱이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못했구나. 나는 그저 장난스럽게 받아주는 것이 욱이가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히려 욱이에게 아빠는 내 고민에 별 관심이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과 같았구나. 욱이는 정말로 걱정이 많았구나.
탈모를 겪지 않은 사람은 탈모인들의 고충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머리 좀 빠질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타인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지 않은가. 물론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희망이 섞인 위로를 해주는 게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원장님이 해주신 몇 마디의 공감과 희망의 말이 욱이에게는 큰 위로가 된 것 같았다.
30년 전통의 오렌지 카운티 미미 미용실은 헤어스타일만이 아니라 마음도 살펴주신다. 오랜 단골이 많은 미미 미용실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