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 한 끼, 커피 한 잔이 주는 회복의 힘에 대하여
남편의 출장을 핑계 삼아, 친정에서 약 2주간의 시간을 보냈다. 2주 동안 꽤나 많은 것들을 진행했다. 안경을 수선하고, 외주일 마감을 치르고, 컴퓨터 보수까지 끝냈다. 회사는 회사대로 바쁜 일정이 돌아가지만, 그 안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친정집은 회사와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정집에 오면 나도 모르게, 내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무장해제의 시간이다. 예를 들면 생존을 위해 해야 할 식사와 식사를 위한 요리, 설거지 그리고 청결을 위한 청소와 세탁이 대표적이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하는 운동도 주 2회에 갔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 모든 것들은 친정 집에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되었다.
결혼 전에도 그다지 집안일을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독립한 자녀가 되어 귀한 손님이 된 기분이 든다. 이제는 빈 둥지가 된 집에 엄마아빠는 그저 자식과 머무는 것으로도 행복해하신다. 오히려 신혼집에 머물며 요리를 할 때면 건강한 '요리를 해 먹어야 해', '운동을 해야 해'와 같은 내적인 압박을 스스로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정집에 오는 순간 그 모든 압박은 사라진다. 온 김에 엄마밥을 먹어야지라고 마음으로 바뀐다. '내가 이제 얼마나 엄마 밥을 먹겠어'로 바꾸는 순간. 어쩌면 내 기준에는 그다지 건강한 음식이 아닌 음식들도 편하게 엄마의 손길이 닿은 한정판 음식이 되어 식사를 하게 된다. 설거지까지 해주시는 엄마표 호텔 서비스에 밥을 먹고 늘어지게 있다가 진정한숨을 돌리고 나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마 내일 인바디 체중계에 올라오면 약간에 후회가 몰려올 수도 있다. 이미 약간의 체중이 늘어감을 느끼고 있는 바이지만, 언제 또 이러려라. 아마 신혼집에서는 편의점 음식을 겨우 먹고 일을 하고 싶다가도 남편이 눈에 또 밟혀 어찌해야 하나 하고 전전긍긍하다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을 바로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밥 해달라고 요리하는 남편은 아니지만, 내 욕심이다. 좋은 음식을 먹고 싶다. 이왕이면 남편도 먹이고 싶은 마음. 그것이 나의 마음이고 욕심이다. 이 욕심이 다 채워지지 않아서 힘이 들다. 이럴 때 오히려 물리적으로 할 수 없는 공간인 친정집에 간다면, 스스로가 납득이 된다.
약간의 마음에 부채감이 들어, 이제 식단을 해야 하는 데라는 말을 할 때면 오빠는 '리커버'. '회복의 시간'이라면서 마음의 부채감을 떨쳐낼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남편의 말은 나를 놓아준다. 충분히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었기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럴 때면 납득이 된다. 사실 나의 리커버는 엄마의 음식이었고, 절제하던 커피였을 것이다. 어찌 보면 사치다. 제대로 된 물건하나를 사는 것이 이득이고 현명한 소비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자잘한 사치가 나를 지킨다고 생각한다.
회사와 외주일을 병행할 때면,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진다. 시간에 비해해야 할 것이 많을 때, 여행은 훌쩍 떠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 스트레스를 관리하기에 좋은 것들이 있다. 매일 같은 작은 보상은 '커피'다. 근무지합정에는 개성 있는 커피집들이 많고, 회사 출근길에 내입에 꼭 맞는 커피집이 있다. 그 커피를 한 잔 하고 회사로 출근하는 것과 맛있는 점심식사를 먹는 것이 나의 행복이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사실 이는 사치이다. 돈을 모아야 한다는 유튜브를 보면, 커피와 음식을 아끼라고 한다. 동의한다.
하지만 그럴 때도 있고, 아닌 때도 있는 것 같다. 나같이 1시간 반거리의 출퇴근을 하는 사람은 사실 하루의 많은 부분이 출퇴근까지 회사일에 포함된다면 하루의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 과거의 나는 커피값을 아끼기 위해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도시락도 싸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달라진 출퇴근 생활과 독립생활은 그 자체로 나에게는 도전이고 하루하루가 적응의 과정이다. 그 고단함은 덜어주는 한잔의 커피가 남이 해준 점심요리 한 끼를 사 먹는 것은 나름의 소소한 행복이다. 절제하여 쌓이는 통장 잔고를 보고 행복한 것보다, 지금은 잠시의 안위를 버티는 것이 조금 더 집중되는 하루하루이다.
일단 나는 돈을 벌고 있다. 회사생활을 하고 있고 때때로 들어오는 외주일로, 부가적인 수입이 있다. 버티면 된다 이로서 되었다. 지금은 이 구조를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자. 버티는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는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