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남녀 사이에만 있을까
어느 날 큰아이 돌상에 올렸던 무명실 타래를 찾은 어머니가 상아실패를 꺼내 왔다. 내 양손에 실타래를 끼우더니 본인은 묶인 실의 매듭을 찾아 감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리듬에 맞춰 손을 양쪽으로 움직이면 맨 몸의 실패에 차곡차곡 실이 감겼다. 그 완벽한 호흡의 시간 동안 당신과 나는 실타래에서 실만 풀어낸 것이 아니라 담아만 두고 말할 수 없었던 마음을 풀어내고 감았다. 그렇게 서로가 지닌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었다.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아직 초보주부라서 홑청을 손질하다 보면 어머니의 힘에 매번 앞으로 쏠려서 넘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불 빨래를 마지막으로 하던 팔순이 훨씬 지난 후에는 당신이 내게 딸려왔다. 아마도 힘의 균형이 변하는 동안 삶의 이력도 자연스레 전수되고 있었나 보다.
이불 꿰매는 일이 끝나도 실패는 일 년 내내 이래저래 바빴다. 철마다 베갯잇도 기워야 했고, 행주와 걸레의 가장자리 감침질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여름이면 봉숭아를 찧어 손톱에 묶기도 했으며, 장아찌를 만들거나 백숙을 삶을 때도 제 몸에 감긴 무명실을 푸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들이 통과의례로 겪는 유치를 뽑을 때면 무명실은 없어서는 안 될 도구였다. 실을 풀어 치아와 방문 사이를 묶은 후, 문밖에 울음이 그렁그렁 한 아이를 세워두고 닫힌 방문을 여는 것으로 영구치 시대가 개막되었다.
무거운 목화솜이불을 손질 간편한 차렵이불로 바꾸고, 그에 맞춰 베개커버를 씌웠다. 아이들도 더 이상 유치를 뽑거나 손톱을 물들이지 않게 되자 실패는 반짇고리 안에서 잠만 자는 날이 많았다. 무료한 봄날의 늙은 고양이처럼 제 집에서 엉킨 털을 세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머니도 그랬다. 한 올 한 올 당신 몸에서 풀어낸 실로 집안의 모든 균열을 기워내며 활력이 넘치던 분이, 빠르게 진행된 환경의 변화와 함께 노쇠해 갔다. 점점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면서 영혼에 쌓이는 주름의 숫자가 늘었다. 그리고 초겨울, 아직 따뜻한 햇살을 따라 먼 길을 떠나셨다.
중국 당나라 이복언의 〈속현괴록續玄怪錄〉에는 언젠가 맺어질 인연은 보이지 않는 운명의 실로 서로 이어져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월하노인이 붉은 끈으로 발목을 묶은 남녀는 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하여도 반드시 맺어진다는 것이다. 인연이 비단 남녀 사이에만 있을까. 어머니와 나도 운명의 실에 연결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처음 보는 누구라도 딸이라 생각할 만큼 닮은 외모며, 막내며느리와 삼십 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 차곡차곡 쌓은 이야기들, 당신의 임종을 혼자 지켰다는 것까지. 우리는 아마 새끼손가락 어느 마디쯤에 흰색 무명실을 단단하게 묶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거나 외출했다 들어오면 인사를 드릴 어머니는 안 계신다. 부재의 상실감과 텅 빈 느낌에 한동안 힘이 들었지만 이제 조금씩 적응되어 간다. 어쩌면 집안 구석구석, 할머니에서 어머니 그리고 내게로 온 실패의 시간 같은 게 있어서 허전함을 견딜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실을 꿴 바늘이 갑자기 흐릿해진다. 창밖으로 나풀나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실낱같은 햇살을 따라나선 당신이 새삼 그리워진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