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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냐 물이냐, 내 사랑에도 성질이 있다면

갈등이 사랑을 정한다.

by 비평교실

만물은 불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다.

탈레스가 만물은 물이라고 말한 후 세상은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세상의 근원은 무엇인가?


근원이 무엇인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원소라고 말하는 이도 생기고, 공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불도 당연히 나올 법하다. 벽에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이고 ‘미술’이라고 한다면 이제 사과든 책상이든 무엇이든 다 붙여놓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시시하게 볼 일은 아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대립과 투쟁’에 있다. 불이 죽으면 공기가 생겨나고, 공기가 죽으면 물이 생겨난다. 만물은 대립과 변화를 이루고 투쟁한다. 죽음과 생성이 대립하고 대립과 투쟁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사랑하는 연인이 다툼을 하다가 갑자기 키스를 나눈다.


방금 싸웠는데 왜 저러지?


힌트도 없이 갑작스럽게 전개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분노가 서로를 흥분시키고 흥분이 사랑이 된다. 공포와 분노와 사랑은 유사한 감정이다. 싸우다가 차갑게 식는 경우도 있지만 되려 뜨겁게 달아오르는 일도 있다.


신기한 경험이다. 연애하면 다툴 일이 생긴다. 처음에는 지극히 사소한 다툼이다. 서로 기억도 못할 정도로.


어떤 연인은 서로 말하지 않고 피하는 관계가 있다. 대화를 나눌수록 어색해진다. 자신이 냉담한 감정이라는 걸 상대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반면에 어떤 연인은 불같이 화를 낸다. 격렬하게 다툰다. 말싸움하고 속에 있는 것을 내뱉는다. 상처 주고 헐뜯는다. 그러다가 다시 화해한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건 말하기 어렵다. 갈등 자체를 축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연애 유형은 어떤 유형이고, 어떤 것인가?

그건 갈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갈등이 연애를 규정한다. 갈등은 우리의 연애가 어떤 연애인지, 어떤 사랑을 나누는지를 알 수 있다. 서로가 사랑해서 만났다. 그러나 사랑은 우리를 규정짓지 못한다. 사랑이 우리를 규정짓는 게 아니라 갈등이 우리를 규정짓는 건 역설적이다. 사랑과 갈등은 배트맨과 조커처럼 왜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가는지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6.jpg 갈등이 사랑을 규정한다.


내 사랑은 불인가? 물인가?

그걸 알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볼 일이 아니다. 지나온 갈등을 바라보라. 사랑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보다 나와 어떤 다툼을 나누었는지가 중요하다.


화합과 행복은 연애를 지속시킨다.

대립과 투쟁은 연애를 변화시킨다.


지속하는 건 중요하지만, 변화를 막을 순 없다. 두 사람이 만나면 갈등은 필연적이다.


다만 불처럼 갈등하는지, 물처럼 갈등하는지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을 진단하고, 내 연인을 진단하고 함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출발하기 위해서다. 진단 후에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연애 중이라면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어떤 일로 다투었는지. 왜 다투게 되었는지.

그것이 우리 연애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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