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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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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Nov 20. 2018

이상한 방송국의 대학생

M씽크와 함께한 날들

“이제 뭐하지?”


2018년은 휴학과 함께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휴학의 동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2017년은 유독 내게 힘든 해였다. 1학기에는 과 교수님 세 분이 한꺼번에 안식년을 내시는 바람에 반 강제 휴학을 하고 프랑스어 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2학기에 다시 복학했지만 진로에 대한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온몸을 갉아먹었다. 학기 중에는 심장 통증이 와서 심장내과에 다녀왔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체해서 일주일 만에 4키로가 빠졌다. 평창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2018년 2월에는 집 밖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올림픽 중계를 보다 졸고는 했다. 말 그대로 몸이 고장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10년 지기 친구를 보러 싱가포르 여행을 간다는 것 빼고는 아무런 계획이 없는 휴학 학기를 결심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무계획 휴학은 수포로 돌아갔다학교 교지도 시작했지만, 싱가포르 여행을 가기 전에 M씽크 모집 공지를 보고 출국일 전까지 지원서와 글을 썼다. 다행히 2017년 MBC 드라마 <파수꾼>을 챙겨봤기에 비평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동안 홍보성의 서포터즈나 기자단 활동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모집공고에서 느껴진 M씽크는 조금 다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수꾼> 비평 역시 비판적으로 썼다. 될 대로 되라지. 


“그 이유가 뭘까요?”


다행히 싱가포르에서 서류 합격 메일을 받고 M씽크에 최종 합격을 했지만, M씽크 면접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큰 상암 MBC 건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이질적이었지만, 면접 때 홍보국장님의 첫 질문은 충격이었다. 


“드디어 드라마에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반가워요. 비평 글도 드라마 관련해서 쓰셨고 자기소개에도 타사 드라마 비평 글이 화제가 되었다고 나오니 질문하겠습니다. 왜 최근의 MBC 드라마는 젊은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받는 걸까요? JTBC, tvN은 시청률 1-2%가 떠도 실험적이라 평가받지만 MBC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첫 타자로 개인 질문을 받았는데, 너무 당황스러워서 순간 ‘넷플릭스’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국장님 지금 생각해도 너무 하셨습니다. 무슨 첫 질문이 입사 질문 수준의 돌직구란 말입니까.) 다행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진 다음 제대로 대답할 수 있었지만, 면접을 하고 나와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역시 이곳은 만만한 곳이 아니구나

그리고 변화를 원하는구나. 


방송국의 토끼 굴로


M씽크에 합격하고 휴학생 신분으로 만나게 된 상암 MBC는 이상하고 신기한 곳이었다. 눈을 돌리면 연예인이 있었고, 화려한 외관만큼이나 방송국 건물은 복잡했다. 그러나 그 복잡함과 화려함보다는 방송국 안의 사람을 만날 때가 더 좋았다. 방송국으로 들어온 어리둥절한 대학생들의 안내자가 되었던 에디터님들, 어색했지만 함께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 M씽크 시청자위원들과 함께 해서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빛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실마디를 찾고 행복해졌다. 


고3 때 부모님 몰래 보던 <투윅스>를 연출하신 손형석 CP와 만났을 때 기꺼이 팬심을 드러냈다. MBC 라디오국에 30년 넘게 근속하면서 현재까지 <조PD의 비틀즈라디오>를 진행하시는 조정선 PD는, 라디오에 크게 관심 없던 내게도 멋진 어른이었다. 김구산 예능 CP의 강연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한국어에는 웃음을 표현하는 언어가 없음을 깨달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특강에서 뵀던 <PD수첩> 박건식 PD를 다시 M씽크 강연에서 만났을 때는 얼마나 겸연쩍었던지. 


그리고 M씽크는 그 깨달음들을 브런치에 정리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2016년부터 브런치 작가였고 브런치 무비패스에 참여하던 나로서는, 뒤에서 쫓아오는 불독(=마감일)이 하나 더 생긴 격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쓸 수 없던 주제들과 지식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라디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썼던 <꺼놨던 라디오도 다시 보자>나 드라마의 캐릭터성에 대해서 쓴 <시원하지만 익숙한 아이스크림처럼>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의외의 일이었지만 기뻤다. 


여정을 마치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8개월의 M씽크 활동도 이제 다음 달이면 끝난다. 누군가는 조금 많은 조회 수와 원고료, 그리고 경험만 남은 것 아니냐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내게 2017년은 방황과 분노의 해였다면, 2018년은 조금의 안정과 방향의 해였다. 비록 올해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끝내고 반도의 흔한 취준생이 되겠지만, 그래도 대학 생활의 끝자락에서 M씽크를 만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좋은 사람과 삶의 방향성에 있어서 도움을 얻었으니 되었다.



M씽크 면접 때 받은 MBC 다이어리를 올해 내내 가지고 다녔다. 원래는 다이어리가 생겨도 잘 쓰지 않는 타입인데, 파란색의 MBC 다이어리에는 M씽크 아이디어와 올해의 스케줄과 생각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내년쯤이면 이 다이어리도 영화 포스터와 책들로 가득한 나의 책장에 꽂혀 있겠지. 가끔 책장을 바라보다 파란색 다이어리를 보면 2018년이 생각날 것이다. 


방향을 비로소 잡을 수 있었던 2018년과, 그 속에 있던 M씽크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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