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다시 살아가야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개월 간의 인턴이 지난 월요일에 끝났고,
금요일에는 꽤나 가고 싶었던 회사의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이번 주말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잠만 잤다.
이번 공채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면접까지 간 것만으로도 잘됐다고 생각했다. 처음 넣은 공채는 광탈이었는데, 그래도 두 번째 공채에서 면접 대상자가 된 것만으로도 어디야. 블라우스와 슬랙스와 검은 구두를 챙겨 입고 아침에 면접을 보러 갔다.
후기를 보니 각자 면접이 다 달랐던 것 같지만, 처음 보는 입사 면접이기도 했으나 압박 면접이라고 느꼈다. 실제로 가장 포스가 남달랐던(?) 면접관들이 모인 방이라고 면접자들이 말할 정도였으니까. 나중에 확인해보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를 연출하셨던 PD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첫 입사 면접 치고 후회하지는 않았다. 최선을 다해 방어했다. 아니, 방어라고 느껴진 시점에서 이미 망한 면접인가. 첫 질문에서부터 내가 했던 인턴의 장단점을 물어보는 첫 입사 면접이라니 좀 너무하긴 했지. 꽤 곤란한 질문들이 계속 날아왔다. 인생에서 가장 당신을 힘들게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른 방송사와 본사를 비교하는 질문, 나의 경험에 대해서 묻는 질문. 업무에 대한 질문보다는 소위 ‘인성’, 조직적합도에 대한 질문들이 힘들었다.
이제 돌아와서 보면, 너무 솔직해서 떨어진 건 아닌가 싶어. 조금은 더 나를 포장했어야 했나. ‘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사람’이라는 질문에 곧바로 본심이 튀어나와 버렸으니까. 방어해도 한계가 있었나 봐. 있었던 경험도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괜찮아. 다음에 더 잘하면 돼. 그리고 이미 합격자 인원이 너무나 적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 떨어진 게 꼭 내 탓은 아니지 뭐.
주말 내내 잠만 잔 것은 떨어진 게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6개월 내내 쥐고 있었던 긴장이 풀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소속감과 긴장감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순간은 언제나 버겁다.
마치 대입 수시 전형을 모두 끝내고 하루 종일 잠만 잤던 스무 살 때처럼.
그 와중에도 일상적인 일들을 했다. 6개월간 이어졌던 인턴이 끝나 시원섭섭한 마음은 일상에 서서히 사라졌다. 최근에 부모님의 생신이라 외식을 함께 했고 인터넷 서핑을 했다. 16층 휴고네 집에 가서 초콜렛과 휴고의 간식을 선물했고, 생각지 못하게 아저씨의 아내 분과 집에서 이야기를 했다. 꼬리를 살랑거리는 휴고와 함께. (생각지도 못하게 조회수가 터진 골든 리트리버 휴고의 이야기는 여기로!)
아저씨가 어떻게 돌아가셨는 지를 더 들었다. 잠복 바이러스로 인한 급사였고, 아저씨는 우연하게도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에 돌아가셨다. 휴고가 미국에 함께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소식 역시 들었다. 나는 차분하게 그분의 영어를 엄마에게 간단하게 통역했다. 엄마는 내내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비교적 담담했던 나도 울컥한 순간이 있었다. 그분은 우리에게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었다. 두 분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현실은 언제나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것일지도.
이 길이 맞는 걸까. 자본주의에서 최고라는 돈도, 사람들이 다 말하는 워라밸도, 한국에서 최고라는 안정도 갖춘 직업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 쉬운 취직이 어딨겠냐만은, 가면 갈수록 좁아지는 바늘구멍이다. 친구들이 대학원, 로스쿨, 취직 성공을 한동안 내게 남은 것은 어쩌면 스토리텔링만 있을 지도. 인턴이 끝나고 나니 소속감이 갑자기 사라져 더 불안해하는 걸지도 몰라.
그래도 스토리에 심장이 뛰는 감각을 믿어보고 싶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아직은 후회를 남기고 싶지는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