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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Feb 11. 2018

파리에 첫눈이 내리면

56년 만에 파리에 찾아온 폭설 




“눈이 와요”


잠깐 화장실 갔다가 다시 사무실에 들어오는 나를 보고 인턴 친구가 말했다.


“눈?”


대답과 동시에 창문을 보자 정말로 창문 밖으로 하얗고 고운 눈들이 춤을 추듯 흩날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우와. 정말 눈이 오네”


떨어지는 눈을 보자,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순식간에 들뜨는 것을 느꼈다. 마치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것처럼, 눈을 보았으니 설레고 두근거리는 일들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옆에 있던 직장 상사는 내리는 눈을 보며 신나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말했다.


“아직 팔팔하네. 난 이제 눈은 스키장에서만 좋은데.”


아직 팔팔하다는 말이 어떤 뜻일까? 아직 눈을 보고 좋아할 정도로 감수성이 살아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눈을 보고 좋아할 정도로 아직 젊다는 의미일까? 모르겠다. 다만,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고,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눈을 보고 여전히 마음이 들썩들썩할 수 있을 정도로 팔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눈을 보고 좋아한 것은 단순히 아직 ‘팔팔해서’ 만은 아니다. 파리에 눈이 오는 게 그만큼 흔치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와도 눈인지 비인지 모르게 오다 바로 멈춰버리는 게 대부분 일지라 이렇게 눈다운(?) 눈을 보는 건 파리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것도 기후변화로 인해 춥지 않은 겨울을 보냈던 파리에서, 겨울의 끝자락인 줄만 알았던 2월에 눈을 볼 줄이야. 어제 새벽에 자면서 왜 그토록 춥다고 느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파리의 밤은 아주 오랜만에 눈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눈이 오는 걸 보니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나 봐요”


폭설과 한파가 겨울 내내 지속되었던 한국에서 온 지 이제 겨우 일주일도 안 된 인턴은 눈을 보고 봄이 아직 멀었음을 아쉬워했지만, 나는 이제야 오는 겨울이 반가웠다. 눈을 모르는 겨울의 파리는, 겨울 내내 비와 칙칙한 회색 하늘만 존재하는 파리는, 진정한 의미의 사계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사계절을 모르는 도시는 왠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골고루 겪지 않은 도시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눈이 오기 시작한 지 삼일째 되는 날 아침, 회사를 가려고 집 밖을 나서니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그것 말고도 평소와 굉장히 다른 게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다고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고요였다.


집 앞 거리에는 버스는커녕 단 한대의 차도 다니지 않고 있었고, 차도 나서지 못한 길에 용감하게 홀로 모험에 나선 오토바이 한 대만이 원래 자신의 속도를 내지 못하며 비틀거리는 취객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세상이 눈과 함께 정지된 것만 같았고, 어렸을 때 얼음 놀이를 할 때 불렀던 노래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그대로 멈춰라 



벌써 한국이면 사람들이 다니는 길 위로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뭐라도 뿌렸겠지만, 눈 경험이 없는 도시에서

는 하얀 눈이 진흙탕이 될 때까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모두 아침부터 엉덩방아를 찍지 않기 위해 자연스레 걸음의 속도가 느려졌다. 차도 다니지 않고, 그나마 길에 얼마 있은 않는 행인까지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언제라도 넘어질 것처럼 걷고 있었다.


 아직 그 아무도 살아보지 않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오죽했으면, 파리에서 반평생을 넘게 사셨고, 이제 칠순을 바라보시고 계시는 한 교포는 아침에 집을 나서자 자신이 십 년 넘게 매일 보는 거리를 못 알아봤다며 계속 흥분해서 말했다.


“매일 보는 내 집 앞인데 못 알아보겠는 거야.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았어”

지하철 입구로 들어오니 예상했던 대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후 조건으로 인해 13호선이 운행에 많은 문제를 겪고 있으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평소 같으면 출근 시간에 지장이 있어 짜증이 날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은 그리 반갑지 않을 소식도 한껏 눈으로 달아오른 나의 들뜬 마음을 식히지는 못했다. 더운 나라에서 갑자기 추위가 몰려오면 대책이 없는 것처럼, 눈이 안 내리는 도시에 갑자기 며칠 연속 눈이 쏟아지니 도시 전체가 마비될 수밖에. 지하철은 평소보다 만원이었고, 어쩔 수 없는 부대낌에 누구는 짜증을 내며 말다툼을 유발했고, 또 누구는 같은 상황에서도 배려하며 “아니에요. 그럴 수 있어요”라며 웃고 있었다. 난 의아했다. '왜 이토록 아름다운 날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있을까?'


회사에 와서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평소 지하철이 이보다 더 만원일 때도 보지 못했던 여러 말다툼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눈이 와서 평소에 차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서 생기는 일들이었다. 한 동료는 말했다.


“저렇게 끼어서 다니는 게 싫어서 차를 타고 다니는 건데,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야 하니 얼마나 싫었겠어. 그러니까 조금만 부딪히거나 사람에 끼면 짜증을 내는 거지”

 

아직 팔팔하다는 거, 눈을 보고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저 두 다른 마음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파리에서 이토록 오랜만에 내린 눈을 보고 오늘은 차를 끌고 가지 못해 짜증 난다는 마음과, 조금 불편해도 눈이 와서 그러니 웃으며 배려해야 한다는 마음 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두 마음이 눈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며 마주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마음 자세와 그렇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마음이 팔팔하다는 것. 그건 어쩌면 살아있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기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세상에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이토록 하얗게 눈 덮인 세상을 보자 문득 쿠바의 산티아고에서 만났던 친구가 떠올랐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었고, 여행 관련 제재가 풀렸어도 평균 소득으로 여행은 감히 꿈꿀 수 없는 가난한 국가에 사는 그는 한 번도 눈을 본 적 없다며 말했다. 



“나도 언젠가 눈을 한 번 보는 게 소원이야”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 졌다.


눈꽃 망토를 걸친 파리의 이 아름다운 겨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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