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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10. 2018

어쩌다 가을이 왔을까


<500일의 썸머>라는 영화를 보면 한 남자가 여름(썸머)이라는 이름의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여자가 이별 통보를 한다. 그리고 어느새 불쑥 다시 나타나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말한다. 사랑이라면 믿지 않고, 그 누구의 구속도 받고 싶지 않아하던 그녀가 이제는 운명을 믿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카드 회사에서 카드 문구를 작성하던 일을 하던 남자는 썸머와의 이별 이후 한참을 방황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늘 진정으로 원하던 건축가가 되기 위해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건축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면접을 보러 온 다른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 여자에게 이름을 물어보자 여자는 운명처럼 답한다. 


가을(어텀)이에요


남자의 사랑에도 그리고 인생에도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왔음을 보여주며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가을이 어느새 성큼 다가온 지금, 봄이 왔다고 좋아한 게 엊그제 갔은데 훌쩍 찾아온 가을을 느끼며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해진다. 새해가 시작되고 새로이 결심을 하고 올해는 뭔가 다르리라 스스로에게 다짐했건만. 내 삶은 올해 초에 비해서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계절은 이미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계절이 변하듯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새어나가 듯 내 손을 벗어나고 있는 시간이 아니 내 삶이 두려운 걸까? 그나마 나를 위로하는 건 올해 1월 1일에 눈을 뜨자마자 신청했던 브런치에 부족하나마 아직까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상에 파묻혀 나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이 조그마한 증거(?)가 엎친데 덮친 격 환절기에 감기 몸살로 고생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달래준다.


오래전부터 알았던 지인들과 간만에 나누는 소식에서도 그들의 인생이 내가 알지 못한 사이에 여러 변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함께 꿈을 말하며 웃고 술을 마시던 친구들인데 이제는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쁘고 서른 중반에 '나이 들어서'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이들의 인생에도 어느덧 '뜨거움'이 살아지고 있는 건 아닌가 조금은 씁쓸하고 또 조금은 슬프다. 그리고 이들의 변화를 보면서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어느덧 내 인생에서도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나는 곧 다가올 인생의 가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 내가 원하듯 원하지 않듯 결국 가을은 찾아올 텐데 나는 아직 이 여름을 보내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거 같지 않다. 여전히 무모한 꿈을 꾸고 믿으면 손해 본다고 하는 것들을 믿고, 아직은 여전히 충동적으로 사는 나는 가을이라는 무르익는 계절과는 아직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무언가를 거둘 만큼 아직 뿌린 것도 없는 것 같아 더 그럴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있었던 계절, 썸머'


영화 포스터에 이 문구처럼, 누구에게나 여름이 있었고 또 가을이 온다. 


다만, 이 여름이 지나가지 않을 것이고 영원하리라 믿었던 나 자신이 이 계절의 끝에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하루하루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은 삶이 흘러가는 속도를 자각했다는 뜻일까? 과연 이 가을은 그리고 언젠가 곧 다가올 내 인생의 가을은 또 어떨까?


<500일의 썸머>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더 이상 운명을 믿지 않았을 때  <가을>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필연처럼 나타났던 것처럼, 이 가을 역시 단순히 지나가는 시간의 우연 그 이상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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