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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타 Sep 12. 2024

10년이면 표류도 고급지게 변한다

마음이 단단해지는 고연차 공직생활

짠밥이 채워주는 자신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한 분야에서 10년을 근무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야말로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죠?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시기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시야가 많이 넓어지더라고요.

  

그동안 당장 눈앞에 놓인 업무에 급급하며 하루하루 해치우기 바빴다면 이제부턴 메타인지적 접근이 가능합니다. 

법령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 타 시도에서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그리고 본인이 처리하는 업무를 관리자의 관점에서 바 라볼 수도 있게 됩니다.


어느덧 행정실 업무에 있어서는 모두들 나의 말을 신뢰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그렇다고 업무능력과는 크게 상관없는 것 같아요. 

짠밥이 말해주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죠. ㅎㅎ

몸에 적응된 복무, 공손하게 응대하는 태도, 정확한 업무 용어의 워딩 등...

10년 전의 나와 많이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사진 : unsplash 의 magnet  me


이제는 나만의 전문성을 갈고닦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아요. 

본인이 관심 있고 잘하는 분야가 있다면 더욱 좋고 혹은 항상 어려웠던 부분을 좀 더 파헤치는 것도 좋아요. 

언젠가 다른 학교에 가서도 해결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죠. 


일 잘하는 분들 중에는 자기만의 정리 노트를 만들어 두고 활용하는 것도 보았어요. 

후임자나 후배들이 물어볼 때 전달하기도 하고 발령이나 연수 때 당황하지 않고 자료를 쉽게 꺼내 보는 게 참 멋지더군요.

  

       





외로운 중간관리자 행정실장


15년 차 정도 되면 9급으로 들어와 6급 승진을 앞두었거나 이미 했을 수도 있어요. 

대부분 행정실장이란 자리에서 근무하고 있을 것 같네요. 

요즘은 소규모 학교의 나홀로 실장도 없어서, 근무 기간이 길어도 의외로 실장을 안 해본 사람들이 많아요. 


처음 실장이 되신 분들은 그동안 본인이 보아왔던 실장님이란 자리는 편한 자리로 보였을텐데요, 생각과는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행정실이란 곳이 너무나 크고 복잡한 세상이며, 그곳에 있는 일들을 모두 관여하여야 하는 자리가 실장자리란 것을 말하는 지금 이순간.... 숨이 턱에 차오르는 느낌입니다.

 

결재는 왜 이렇게 많아서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지, 매년 해야할 사업은 왜 이렇게 많고 각종 채용에 따른 급여 업무는 또 왜 이렇게 복잡한지.... 

불평할 새도 없이 그 많은 종류의 업무를 모두 잘 알고 있어야 하지요. 

담당주무관님들이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처리한 업무이니만큼 더욱 귀담아 듣고 정성스럽게 읽어야 합니다.


각종 회의에서 협의한 것을 해당 교직원들이나 관계자분들께도 알려야 하고, 학교 내 다양한 직종에 있는 교직원의 고충을 들어주는 자리이자 문제점이 발생하면 적극 해결 해야 합니다. 

공사나 사업관련하여 찾아오는 외부인사들과의 대화 역시 에너지가 많이 필요합니다. 

공무원 갑질이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에나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이상하게 을이 되는 상황이 많습니다.


" 왜 모두 내가 할 일인가요? 일까지는 참을 수 있어요. 과태료며 무슨무슨 관리자 등 책임도 너무 많은 자리인 데다가 언제 어디서나 저만 찾아요. 주말에는 소방 수신기가 오작동 났다고 새벽에 연락이 왔어요... 하루종일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은데 연가 쓸 때조차 얼마나 눈치가 보이는지 몰라요..."


승진발령으로 인근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실장이란 자리에 있게 된 후배님이 한 말이에요.

직분에 맞는 대우와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책임만 져야 한다는 것이 부조리하다고 합니다.

삼포세대들의 좌절감까지 더해져 분노와 무기력감이 말없이 커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어요.


후배님들께 미안하게도 저는 생각 없이 일만 했답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개선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눈앞에 있는 문제만 해결하기에 급급했지요. 

그래요... 행정실장은 직책에 따르는 수당도 없고 규정에 명시된 권한도 없는 직위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감사나 사건 사고 발생 시 주의나 경고를 당연히 짊어지는 자리라서 억울하다는 생각도 여러번 들었지요. 


책임 질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직책이란 뜻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던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보람도 많이 느끼고 다른 교직원분들이 항상 존중해주셔서 일할맛이 나기도 했지요. 

외롭지만 중책인 만큼 저의 언행이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걸 알고는 조심스러워지더군요.

오늘도 더욱 세련되고 합리적인 사고의 멋진 중간관리자가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일하고 있답니다.

    

사진: Unsplash의Mathew Schwartz



퀀텀점프의 기회 장기연수


6급 이상이 되면, 스트레스 혹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본인의 능력을 퀀텀점프 할 수 있는 연수의 기회가 있어요. 

바로 장기연수랍니다. 

올해부터는 교육행정직의 장기연수를 시행하는 시도교육청이 점점 늘어나고 있더군요. 

정말 반가운 일이에요.  


학교에서 잘 사용하지 않았던 각종 스마트오피스 도구들을 접하고 기획력과 표현력을 향상하는 훈련을 받게 됩니다.  

저에게는 너무 수준높은 수업들이었지만, 대학 논문 작성 시에도 배워 본 적 없는 보고서 작성 꿀팁 등을  멘토로 지정된 교수님이나 선배님들로부터 직접 코칭을 받는 영광도 있었기에 정말 좋은 경험이었답니다.


6개월간 근무지가 아닌 연수원에서 수행하는 연수이기에 요구하는 결과보고서의 수준이 높습니다.  

연수 과정 자체가 정말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타이트합니다. 

그래서 힘든 과정을 함께한 동기들은 서로간의 동기애가 정말 끈끈합니다. 

기수 분위기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연수 기간의 동고동락을 함께 하다보니 그 누구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되는 것 같아요. 

 


사진: Unsplash의Jason Goodman


지혜로운 연장자


어느 날 신규 교감선생님으로 부임하신 분이 계셨는데 저보다 나이가 어렸어요. 

학교에서는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가장 나이가 많은 경우가 많은데 제가 그분들과 비슷해지고 있다니요...

언젠가부터 왕언니급의 선생님들과도 제가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현타가 오기도 합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정말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아서요. 

공직에 일찍 들어온 저도 이런데 30대 이후에 공직에 들어선 분들은 정말 연장자의 자리에 있다는 부담감이 클 것 같아요. 

그래서 승진에 대한  욕구도 커지는 것 같아요.

어린아이들이 있는 초등학교보다는 의젓한 학생들이 있는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요. 


신규 발령받고 처음 뵈었던 실장님들이 그 당시에는 너무나 어른 같았어요. 

유능하고 말도 잘하시고 대체로 멋진 분들로 기억됩니다.

 

이젠 제가 그분들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족하게만 느껴집니다. 

20년이란 긴 시간도 정말 금방 지나가는 느낌이에요. 

갑자기 웬 감상이냐고요? ㅎㅎ 

길다면 길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인생 전체에서 그리 긴 시간도 아닌 것 같아서요.  


(표지사진 :  Unsplash Chen Mizra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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