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 - 우리도 모른다

From 1919 to 2022

by 시드니


서희가 쌍문동으로 이사한 지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서희의 예상대로 하루가 멀다 하고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병원도 수유리에서 다시 열었다. 서희는 종세 모르게 돈놀이를 했다. 종세가 알면 경악할 일이었으나, 서희는 종세가 알 수 없도록 쌍문동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통해 가게를 열어 주고 돈을 불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중정이라고 하면서 어떤 자가 찾아왔다. 종세는 안절부절못했다. 한동안 찾아온 일이 없어서 이제는 잊었거니 했는데 갑작스러운 방문에 서희와 종세는 놀랐다. 그 자는 종대로부터의 연락이 없었느냐는 여전한 물음을 물었고, 서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오히려 저희가 묻고 싶네요"

"도대체 아버지는 북쪽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건가요. 살아는 계시는 겁니까"

"소식이라도 알려주고 연락이 있는지 없는지는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희가 날을 세워 그 자를 다그치자 종세는 서희를 말리며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종세는 그에게 담배를 권하며 말했다.


"그쪽 사람들 때문에 제가 병원을 그만둔 일을 아시지요"

"여기서도 전쟁이 끝나고 장인의 소식을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일 때문인데, 우리는 정말 소식을 모릅니다"

"아내 말마따나 오히려 우리가 그쪽에 소식을 묻고 싶습니다"


그 뒤 중정에서는 더 이상 서희를 찾지 않았다. 훗날 종세는 종대가 평양의 무슨 도서관장으로 있다가 숙청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서희에게는 전하지 않았다. 장인의 제사를 지낼 수도 아니 지낼 수도 없으니 서희가 모르고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 싶었다.






미련만을 남기고 떠난 스미스가 십 년이 지나 한국에 돌아와 서희와 종세를 찾았다. 그 사이 노인이 된 스미스를 보고 서희는 놀랐다. 서희는 스미스를 잡고 울었다.


"서희 그만 울어라. 십 년 동안 너희 우는 걸 안 보고 살아서 좋았는데 보자마자 울기만 하느냐"

"엄마가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오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스미스는 지수를 종세보다도 예뻐했다. 지수가 자신의 손녀라며 지수를 업고 온동네를 돌아다녔다. 동네 사람들은 왠 허연 미국인이 지수를 손녀라고 업고 다니니 수군덕 거렸고 서희는 동네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느라 진을 뺐다.


스미스는 지수에게 주려고 가져왔다며 온갖 미국 과자를 꺼냈다. 그중에는 무슨 알약 같이 생긴 초콜릿이 있었는데, 손에 넣고 다녀도 녹지를 않았다. 지수는 그것을 자랑하느라 온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다 서희에게 혼이 났다.


스미스는 떠나는 날 종세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왜 그동안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연락하지 않았나"

"딱히 더는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아내를 돌보아 준 것도 은혜인데"

"서희는 내 딸이다. 그리고 넌 내 사위고 지수는 내 손녀다. 그러니 앞으로는 인연 끊지 말고 살자"

"이제는 다 잘살게 되지 않았나"


서희는 공항에서 울지 않겠다고 밤새도록 되뇌었다. 절대로 울지 않을 것이다. 서희는 그렇게 단 한 번이라도 스미스에게 울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서희 지수랑 남편이랑 꼭 미국으로 와라 나 늙어 죽기 전에"

"알았어요. 꼭 갈게요. 건강하셔야 해요"

"아이고 우리 지수! 할아버지 보러 꼭 미국으로 와요"


출국장을 떠나는 스미스가 활짝 웃었다. 안았던 지수를 내려놓고 종세와 악수한 후 서희를 한껏 안았다.


"잘 살아라. 이제 더는 울지 말고"

"네 알았어요. 아프지 마세요. 아버지!!"


아버지란 말을 듣고, 스미스는 서희를 놓지 못했다. 스미스의 눈에 굵은 눈물이 고였다. 서희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둘은 한 참을 떨어지지 못했다. 서희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임을 그 먼 땅에서 그를 다시 보는 그날은 그리움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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