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 - 국민학교

From 1919 to 2022

by 시드니


지수의 국민학교는 드디어 학생의 절반을 떼네에 새로 세운 쌍문 국민학교로 분교 했다. 서희는 쌍문동 이름도 그런데 학교 이름에 ‘쌍’ 자가 들어가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서희가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해 여름 우이천에 큰 홍수가 났다. 둑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고, 둑의 가에 있었던 집들은 면도날로 베인 것처럼 절단이 났다. 어디서 내려왔는지 돼지가 멱을 따는 소리를 내며 떠내려 가고 있었고, 온갖 물건들이 거대한 훍물에 섞여 떠내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밤새 동동거리고 바둥거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서희네 집도 마찬가지였다. 종세는 자다가 무슨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를 듣고 급히 서희를 깨웠고 지수를 둘러업고 밖으로 나왔지만 이미 하천이 범람하여 담을 넘고 있었다. 종세는 지수를 업고 서희의 손을 잡고는 필사적으로 하천을 피해 동네 안 쪽으로 뛰었다.


그 사이 서희의 집은 순식간에 반토막이 났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물이 서서 온다고 하더니 무너진 둑을 넘은 물은 폭탄처럼 서희의 집과 그 주변의 모든 것을 한 번에 무너뜨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비는 잦아들었고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하지만 대책은 누구에게나 없었다. 이재민이 된 사람들은 동장에게 살 방법을 구해달라 했지만 동장 또한 어젯밤의 이재민일 뿐이었다. 모두들 살 방법을 찾아 동동거렸지만, 서희는 달랐다. 서희의 눈이 이글거렸다.


"어차피 헌 집이었어요"

"이 판에 새로 지읍시다"

"아예 돌로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지읍시다"


그 난리 끝에도 사람들은 다시 살았다. 전쟁에서도 잡초마냥 살아 남았던 그들의 생존력은 끈질김 그 자체였다. 그 어느 날 밤 사람들이 서희네 집으로 모여들었다. 김일과 이노키가 오늘 한판 붙는 날이었다. 그때만해도 TV는 귀했고 그래도 남의 집에 TV를 보러 간다는 것은 실례였지만, 김일과 이노키가 사생결단을 낸다는 날이어서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TV가 있는 집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지수는 김일과 이노키가 누구길래 어른들이 저리 흥분해서 김일이 이기느니 이노키가 이기느니 하면서 그렇게 흥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서희는 이웃 남자들과 흥분해서 엉덩이를 들썩이는 종세를 보면서 이웃 여자들과 흉을 보았다.


김일은 이노키와 혈전을 벌였다. 김일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고 피가 흐르는 머리로 이노키를 박치기로 박아 이노키의 얼굴에서도 피가 철철 흘렀다. 사람들은 김일이 이노키의 머리채를 잡아 짓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숨도 쉬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서희가 두 손을 불끈 쥐고 일어서며 외쳤다.


"한번 더 박아! 김일!"

"여보!"

"엄마!"


새로 지은 지수의 학교는 바닥이 나무가 아닌 시멘트였다. 화장실도 수세식이었으나 아이들은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할 줄 몰랐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망가져 못쓰게 되었다.


지수는 새로운 학교를 가려면 제법 먼 길을 걸어야 했다. 버스는 없었고 산길 같은 샛길을 통해서 한참을 걸어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동윤의 아버지는 동윤의 등교를 위하여 자전거를 사주었고 지수를 태워가라 했지만, 동윤은 계집아이를 태우고 놀림받는 것이 싫었고, 지수도 동윤의 자전거에 올라타고 학교에 가는 것이 싫었다. 등교 길에 동윤은 자전거를 타고 지수의 집을 형식적으로 둘러서 갔다.


박정희의 독재는 끝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대학에서는 독재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외침이 끊임없이 커져갔고, 정부는 통제 능력을 점점 상실해 가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조금씩 살림살이가 나아졌고, 사람들은 박정희 덕에 먹고살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지수가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서희는 시험을 통해 지수가 좋은 중학교에 진학하길 바랐지만 평준화 정책으로 중고등학교 입학시험은 사라졌고 지수는 집에서 가까운 여중에 입학했다.


지수는 숙희와 함께 같은 중학교에 배정받은 것이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숙희는 공부를 잘해 언제나 서희의 칭찬을 받는 지수의 절친이었다.


중학교에 들어와 지수와 숙희는 언제나 같이 다녔다. 키가 클 것을 예상해 한 줌이나 큰 교복을 접어 입은 모습을 보고 지수와 숙희는 서로 보고 웃으며 자지러졌다.


서희는 지수에게 과외를 시켰다. 서울대 학생이 한다는 과외를 알아내어 다니게 했다. 지수는 과외를 다녀야 하는 것은 불만이 없었지만, 숙희와 같이 다니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숙희의 집은 숙희를 과외시킬 만큼 살지 못했다.


지수는 서희에게 숙희도 같이 과외에 가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서희에게 꿀밤만 먹었다. 그래도 숙희는 언제나 일등이었다. 언제 공부를 하는지 지수와 똑같이 놀고 지수는 서울대 생에게 과외까지 했는데, 일등은 언제나 숙희의 몫이었다.


서희는 지수의 성적표를 볼 때마다 지수에게 숙희의 성적을 물었다. 지수의 성적보다 숙희가 일등이라는 대답에 서희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지수는 누굴 닮아 머리가 나쁘죠"

"여보 나 의사요"

"그럼 내 머리를 닮았다는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지수가 못하는 게 아니라 숙희가 잘하는 거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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