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 - 잊지 않으려고 잊으려 해

From 1919 to 2022

by 시드니


외로움과 고통은 구분되지 않았다. 통증과 기억은 늘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다. 기억의 벽 속에 있는 지수의 하루는 무심하게 계속되었다. 밤은 어김없이 새벽이 되어 돌아왔고 아침은 결국 노을이 되어 밤으로 살아났다.


지수의 배가 불러오자 서희는 지수를 거의 끌고 오다시피 쌍문동으로 데려왔다. 지수와 서희와 종세의 시간은 흐르지 않고 머물렀다. 지수가 먹지 않으니 서희와 종세가 말라갔다.


지수가 처음으로 입을 떼던 날 서희의 눈이 불타올랐다.


“엄마~ 설렁탕이 먹고 싶어~ 많이 먹고 싶어~”


종세는 무슨 정신으로 어디서 사 왔는지도 모를 엄청난 양의 설렁탕을 등짐을 지듯 들고 왔고, 서희는 함지박만 한 들통에 그 많은 설렁탕을 아무 말 없이 부어 끓였다.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수가 첫술을 뜨고, 두 번째 세 번째 계속해서 설렁탕을 입에 넣었다. 지수의 숟가락은 조용히 계속됐고, 한 그릇을 비우고 두 그릇을 비웠다. 종세의 눈이 점점 커지고 지수의 팔을 잡으려 움찔하는 순간 서희가 막았다. 서희는 눈빛으로 종세에게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참을 먹은 지수가 수저를 내려놓으며 작게 말했다.


“살게요! 죄송해요. 엄마! 아빠!”


서희가 지수의 손을 잡고 떨었다. 서희의 피가 지수에게 옮겨 가듯이 서희가 지수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래! 그래! 우리 지수 잘했다. 잘했다. 살아야지! 살아야지!”


그날 밤 지수는 옥상에서 종기의 자잘한 물건들을 태웠다. 작은 불꽃으로 사라지는 종기의 물건을 보는 지수의 눈물이 떨어져 재속으로 사라졌다.


“나쁜 놈! 어떻게 나쁜 기억 하나 없이 그렇게 가니! 그런 거 하나쯤은 주고 가야 잊으려고 노력이라도 하지 않겠어? 이 나쁜 놈아~”

“이제 널 잊지 않으려고 잊으려 해. 우리 아기 잘 키울게 걱정 말고 잘 있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긴 세월이 지나고 다음 세상에서는 우리 오래오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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